우리사회의 영상 패러디 ‘괴물’ | ||||||||||||||||||
‘괴물 신드롬’이 몰아치고 있다. | ||||||||||||||||||
남두현 | ||||||||||||||||||
이 정도의 흥행몰이는 ‘괴물’이라는 영화의 오락성이나 예술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가히 ‘괴물 신드롬’이 몰아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드롬은 사회적 필요충분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괴물’이라는 판타지 공포영화가 쓰나미 같은 위력으로 흥행몰이를 하는 현상의 뿌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괴물’의 흥행 ‘괴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대중예술인 영화는 대중심리와 시대분위기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영화전문가들에 따르면 공포영화나 판타지 영화가 히트하는 시기는 대중들이 정치·경제적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을 때라고 한다. 대중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이입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거대한 판타지 속에 몰입, 현실의 어려움을 도피하려는 심리가 사회전반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김기영의 ‘하녀’(1960), 이만희의 ‘마의 계단’(1964), 권철희의 ‘월하의 공동묘지’(1967)가 폭력적 국가주도에 의한 산업화 시대에 폭력적 힘에 의해 억압받는 민중(특히 여성)들의 고통과 공포를 표현한 것이었다면, ‘괴물’의 선배영화격인 권혁진의 ‘우주괴인 왕마귀’(1967)나 ‘맨발의 청춘’으로 유명한 김기덕의 ‘대괴수 용가리’(1967)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억압적 국가폭력의 메타포이자 그 현실적 괴물을 영화 속에서 죽임으로써 해소하는 대중의 현실도피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제작비만 해도 110억에 달하는 ‘괴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투자자본의 철저한 계산으로 기획된 문화상품이다. 투자자들은 영화소비자들의 성향을 철저히 계산해 기획, 제작, 홍보 마케팅을 통해 대규모 자본력을 동원하고 영화관을 장악, 대량 유통시켜 최단기간 최대수익을 추구한다. 이런 국내 거대 영화자본의 시장논리에 의해 영화소비자인 관객의 영화선택권은 제한되고 극장을 잡지 못한 작품성이 있는 저예산 영화들은 관객과 만날 기회 자체가 차단된다.
유명하지 않았을 때 본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 ‘섬’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를 찍는 사람이 있구나 감탄했던 김기덕 감독.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을 때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던 김기덕 감독이 앞으로 자신의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괴물’ 때문이다. ‘괴물’ 같은 영화가 자본력과 막강한 홍보력을 앞세워 극장을 장악해 버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작품이 영화관에 걸릴 수 없는 현상은 분명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재능 있고 사회의식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작품이 영화자본과 영화상품 유통메커니즘의 괴물에 눌려 버리느냐, 아니면 김기덕의 작품과 봉준호의 작품이 함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사실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사회 전체의 문제다. ‘괴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의 터무니없는 사회적 폭력의 영상 패러디물이 아닐까. ‘괴물’을 영화로만 보고 즐길 수 없는 까닭이다. | ||||||||||||||||||
2006-08-10 12:39 | ||||||||||||||||||
2006-08-10ⓒ희망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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