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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문태준 신작시집 ‘가재미’

임창연 2006. 7. 25. 07:29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문태준 신작시집 ‘가재미’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흰 열무꽃이 파다하다/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극빈’에서) 


이뿐 아니다. 누워 있는 수련을 보고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이라고 경탄한 ‘수련’, 덤불 한 감을 앞에 두고 ‘내 가슴속 거대한 亂筆(난필)’을 떠올린 ‘덤불’…. 모두 따뜻하고 속 깊은 시다. 




문태준(36·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가 나왔다. 기대했던 독자들이 많은 터다. 시인들이 가장 좋은 시로 뽑은 ‘가재미’,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그맘때에는’, 미당문학상 수상작 ‘누가 울고 간다’ 등 그를 스타로 만든 작품들이 묶인 시집이다. 


이미 잘 알려진 수상작품도 좋지만, 잘 여문 다른 시편들 읽는 즐거움도 크다. 시인 스스로도 아끼는 작품으로 꼽는 ‘극빈’이 그렇다. 시인은 꽃이 피기 전에 열무를 뽑아 배를 불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는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 정도로 순한 시인. ‘쓸모 있는’ 열무를 내주고 ‘쓸모없는’ 열무꽃을 받아 가난해진 셈인데, 그 꽃마저도 나비에게 내주게 됐다. 


‘가녀린 발을 딛고/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편편하게 앉아있는 것이었다/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발 딛고 쉬라고 내준 무릎이/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극빈’ 후반부) 


극도로 가난해졌지만 놀랍게도 큰 것을 얻었다. 쉼 없이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시인의 눈은 열무꽃에 내려앉은 나비 한 마리에 인생을 비춘다. 


또 하나의 수려한 시 ‘바닥’의 한 부분.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가랑잎이 지는데/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시인의 예민한 감각은 바닥이 받아줌으로써 빗소리가 날 수 있음을 포착한다. 그것은 주변의 아주 작은 것들, 그것도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자연에 속한 작은 것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일깨워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고향집 뒤란’에 이르는 길 
전통 서정시 맥 잇는 문태준의 3번째 시집 “먼 길을 돌고 돌아 만나는,/마음이 누운 자리”
시쓰기란, 찰나를 통해 영원에 이르는 에움길 그의 시 모태가 되는 추억의 세계 아름다운 우리말로 


최재봉 기자 



» 가재미
문태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6000원 



문태준(36)씨는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잘나가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미당문학상(2005)과 소월시문학상(2006)을 비롯해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동료 시인과 평론가들에 의해 ‘올해의 가장 좋은 시와 시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1994년에 등단한 그는 6년 뒤에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을 출간하고 다시 4년 뒤에 두 번째 시집 <맨발>을 내었으며 이번에는 불과 2년 만에 세 번째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를 내놨다. 6-4-2로 이어지는 시집 발간 속도의 가속화는 그의 시단 내 비중의 증가를 숫자로써 보여주는 셈이다. 
그가 이즈음 ‘미래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단의 또래 시인들과 확연히 다른 경향의 시를 쓴다는 사실 역시 주목해 마땅하다. ‘미래파’에 맞서 그의 시세계를 ‘과거파’라 부른다면 어폐가 있겠지만, 고향집 뒤란으로 상징되는 전통과 추억의 세계가 그의 시의 모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시인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표제작 <가재미>는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주인공이거니와 ‘그녀’는 아마도 시인의 집안 어른일 터.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우는 이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 옆에 나란히 눕는 일뿐이다. 그리고, 죽음 쪽으로만 시선이 가 있는 환자를 대신해 그이의 ‘아직 살았을 적’을 기억하는 것. 이런 일이 죽어가는 이에게 위안이 될까? 마지막 행으로 그에 대한 답을 대신하자.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누가 울고 간다>를 <가재미>에 이어서 읽는 일은 흥미롭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울고/갈 것은 무엇인가//울음은/빛처럼/문풍지로 들어온/겨울빛처럼/여리고 여려//누가/내 귀에서/그 소릴 꺼내 펴나//저렇게/울고/떠난 사람이 있었다”(<누가 울고 간다> 부분) 


미당과 소월 닮은 ‘떠남과 울음’ 





여기서도 ‘누구’는 울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가재미>의 ‘그녀’와 이 시의 ‘누구’를 동일인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시(戀詩) 분위기를 풍기는 이 시에서 울음은 죽음 때문이 아니라 이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양쪽 모두에서 울음이 모종의 ‘떠남’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새겨 둘 법하다. 어떤 식으로든 떠나는 이들이 울고 있는 것. 





이번에는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그맘때에는>을 들여다보자. “하늘에서 잠자리가 사라”진 사건이 먼저 제시된다. 잠자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떠나는 것은, 잠자리에 이어서, 시인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가 울 차례인가. 시를 마저 읽어 보자. “어디로 갔을까//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여름 우레를 따라갔을까//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앉던 그들은”. 시인은 잠자리의 행방을 궁금해하지만, 사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의 운명, 죽음 이후의 행로에 대해서이다. 그렇지만 누군들 알 수가 있을소냐. 그것은 하늘의 소관인 것을.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모든 찰나에게 비석을 세워”(<찰나 속으로 들어가다>)주는 일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꿔온 영원”(<자루>)을 제대로 대접해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찰나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변신술은 중요하다. 유한한 목숨붙이인 우리가 영원을 인식하는 방법은 찰나를 통해서일 수밖에 없다. 보라. 영원의 한 단면으로서의 찰나를 우리네 몸이 구현하고 있지 않겠는가.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극빈 2> 부분) 

영원의 또 한 처소로서 시인이 떠나온 고향집 뒤란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고향집 뒤란은 문태준 시의 태반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곳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시인이 그곳에 그냥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시를 살(生) 수 있을지언정 쓸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신생아가 자궁을 벗어나듯, 젖먹이가 어미 젖을 떼듯 분리와 이유(離乳)의 순간은 닥쳐온다. 그리고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저 풍경 속으로는/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젖 물리는 개> 부분). 그 때문에 시인은 “아,/다시 생각해도/나는/너무 먼/바깥까지 왔다”(<바깥>)고 회한 어린 어조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은 우리에게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지점? “먼 길을 돌고 돌아가 만나는,/마음이 누운 자리”(<저수지>)는 어떠할까. 여기서 시인은 상상적으로나마 영원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몸으로 떠나온 영원을 마음과 시를 통해서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뜻. 결국 시인에게 시 쓰기란 찰나를 통해서 영원에 이르는 에움길이자 지름길인 것. 


‘앓음알음’으로 살아있음을 지각 


인용한 <저수지>의 앞부분에 “산도 와서 눕는다/병(病)이 병을 받듯/물빛이 산빛을 받아서”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주목하자. 그러고 보면 <번져라 번져라 병(病)이여>라는 제목의 시도 있다. 시집에 실린 67편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인 이 시에서 시인은 “나는 지금 앓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선언한 다음 이렇게 시를 마무리한다: “번져라 번져라 병이여,/그래야 나는/살아 있는 사람이다”. 이 시의 맥락에서 ‘앓음’이란 생각하고 보고 아는 행위들과 동일한 의미망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박상륭 식으로 하자면 ‘앓음알음’의 경지라 할 수도 있겠다. 병으로서의 앎과 삶이라고나 할까(식자우환이라는 뜻은 아니다^^). 

전통 서정시의 계승자로서 그의 시에 백석(“그녀는 바람벽처럼 서럽도록 추웠으므로”)과 미당(“아주 가까이는 아니게”) 같은 선행 시인들의 영향이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가 자신의 시에 적극 끌어들인 아름다운 우리말들의 목록은 후대 시인들에게 또 다른 메아리를 울리게 될 것이다: 잘그랑거리다, 외따롭고, 머츰하다, 무러워요, 도리반거리다, 슴슴해졌다, 뜨막하게, 잗다랗고, 걀쭉한, 아그대다그대, 도닥도닥, 졸망스러운….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국 서정詩의 광채 되살린다 

중견·소장 대표시인 나태주·문태준 잇따라 시집 출간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새각시
새각시 때
당신에게서는
이름 모를
풀꽃 향기가
번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도 모르게
눈을 감곤 했지요

그건 아직도
그렇습니다.

- 나태주 ‘아내’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 문태준 ‘누가 울고 간다’ 중

“동시대인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따스한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시를 쓰기 위해 애써왔습니다.”(나태주) 

“좋은 시는 언어의 음악성을 갖되, 이해하기 쉽고 심미적 감동이 잘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문태준) 

한국서정시의 정통 맥을 잇거나 진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중견, 소장 시인의 작품집이 잇달아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나태주(61) 시인의 ‘시전집 4권’(아침고요)과 올해 소월시문학상을 받은 문태준(36) 시인의 신작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가 바로 그것. 

두 시인의 시집은 점점 사라져가는 서정시의 광채를 살리는 언어미학의 정수를 되살려 보여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삶을 깊이있게 성찰하는 시작품일수록 이해하기 어렵다는 독자의 통념을 깨고 가독성 높은 ‘쉬운 시’의 감동을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회갑년을 넘긴 나 시인의 시전집이 자신의 40여년 시력을 정리하며 시세계의 일관성을 강조한 반면 30대 중반의 문 시인의 시집은 서정의 바다에서 새로운 세계로 가는 도정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저 조용하고 잔잔한 서정시로 일관 = 나 시인의 시 전집은 1500여수의 작품을 3권에 분재했고, 나머지 1권은 시론, 소년시절 때 쓴 시작품, 문학연보, 문학 사진첩으로 구성했다. 전집의 제1부 제목 ‘대숲 아래서’는 1971년 신춘문예에 당선했던 작품명이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국,/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자연의 품에 기대 표현하는 서정미학은 이후 나 시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초기 시가 자연과의 합일을 꾀했다면, 후기 작품들은 자연의 섭리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쪽으로 달라졌으나 쉽게 이해되는 서정시를 꾸준히 써 왔다. 실험적인 시작품으로 평단의 이목을 일시적으로 집중시키기보다는 시를 사랑하는 당대 독자와의 소통을 더 중요시했던 것. 이에 대해 시인 자신이 에세이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날더러 변함없이 한국적 정서에 바탕한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말하고 또 낡은 시인이라고 말한다. 예나 이제나 또 내일날에도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조그맣고 잔잔하고 가늘고 시골티 나는 시를 쓰려고 한다.’

나 시인은 “등단 이후 지방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중앙문단의 조명을 덜 받는다는 섭섭함을 가진 적이 있었으나 이제 세상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내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시 전집의 마지막 작품은 이런 의지를 반영했다. ‘사람의 말이 필요치 않았다/고개 끄덕임만으로 그저/눈물 글썽임만으로/가까이 오너라 무릎 가까이 오너라.’(‘그 너머’ 중)

◆독자 소통 지향하되 시세계는 변할 것 = 문 시인의 세번째 시집 ‘가재미’의 표제작은 문인 120명이 2004년 문예지에 발표된 시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았던 것.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가재미’ 중).

시의 화자는 그를 ‘내 아이’라고 부르는 여인의 암투병과 죽음 앞에서 시간의 무상(無常)을 느낀다. 이는 문 시인의 이전 작품집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소월시문학상을 받은 작품 ‘그맘때에는’에서처럼 존재의 사라짐에 대한 불교적 직관도 여전하다. 이번 작품집이 이전과 다른 것은 존재의 성찰을 자연의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려는 시편이 눈에 띈다는 것.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노모’ 중). 

서정시학의 계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문 시인은 “시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며 “제 작품세계에 변화 조짐이 있다는 것을 이번 시집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로 든 작품은 ‘나는 돌아가 惡童(악동)처럼’. 

‘나는 돌아가 惡童처럼,/둘둘 말아 사람을 세워놓고/나를 세워놓고/엉덩이 살을 베어/얼굴에/두 볼에 붙이고/모자를 얹어/나는 살쪄 웃는다’.

문 시인은 “일상에서의 내 문제를 만나는 데 이전보다 보폭이 경쾌했으면 좋겠다”며 “아이의 해맑은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작품이 최근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문학]끝없이 비우고 낮추고 
문태준 세번째 시집 '가재미' 




등단 10여 년 만에 한국 서정시의 대표적인 계보를 잇는 문인으로 솟아오른 문태준(36) 시인. 그는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시인에게 주는 굵직한 문학상을 연달아 받았을 뿐 아니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2년에 걸쳐 선정되기도 했다. 다음주에 선보일 그의 세 번째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는 이러한 평가가 그리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누가 울고 간다’ 전문) 

지난해 미당문학상을 받은 이 시를 포함해 낮고 따뜻하며 물기어린 시들로 가득한 이 시집은 문태준 시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빛살 한 가닥에도 여리게 반응하는 감각, 소리 하나에도 울음을 우는 마음의 현이 섬세하다. 시인은 끝없이 비우고 내려앉으려 한다. 그렇게 고요한 자세를 취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이런 시가 온다.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 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 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 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볕처럼 살다 갔으면/ 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 내가 예전엔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思慕―물의 안쪽’ 부분) 

그의 애오라지 소망 하나는 벌레들과 함께 채마밭에 동거하면서 “꽃과 잎과 문장의 숨통을 둥그렇게 터주는 일”이다. 채마밭에 내린 서리를 보며 시인은 묻는다. “어느 영혼이 지난밤 꽃살문 같은 꿈을 꾸었”느냐고. 채마들도 스러지고 벌레마저 긴 잠을 잘 때도 문장에 숨통을 트는 시인의 고된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