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누고 싶은 글

죽음이 ‘삶의 수면’ 위로 파닥였다

임창연 2006. 6. 10. 12:00
2005년 10월 21일 (금) 18:32   한겨레

 

죽음이 ‘삶의 수면’ 위로 파닥였다


[한겨레] 나는 이렇게 읽었다/황동규 시집 ‘풍장’

온 집안이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통째로 내던져진 듯 후끈 달아올랐던 올 여름, 친구 하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피붙이 같은 친구였다. 대학 신체검사 때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 이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친구였다. 늦은 점심으로 시켜먹은 냉면의 어이없는 맛에 질려 애꿎은 강아지만 골탕 먹이다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후, 혹독한 나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친구 사진 앞에서 두 번 절을 한다./친구 사진이 웃는다,/달라진 게 없다고./몸 속 원자들 서로 자리 좀 바꿨을 뿐,/영안실 밖에 내리는 저 빗소리도/옆방에서 술 마시고 화투치는 조객들의 소리도/화장실 가기 위해 슬리퍼 끄는 소리까지도/다 그대로 있다고.//<풍장 35> 전문

우리는 자그마치 14년을 붙어 다녔다. 그리고 하루살이 눈알보다 하찮은 오해와 코끼리 발보다 눈먼 내 자존심 때문에 꼬박 1년 동안은 보지 않고 살았다. 영정 사진 속에서 알 듯 말 듯 쓸쓸하게 미소짓고 있는 것은 분명 친구였다. 이미 삶 밖으로 퉁겨져 나간 죽음의 공을 향해 나는 뒤늦게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냈고, 그 여름의 한가운데서 황동규 시인의 시집 <풍장>을 만났다.

<풍장>은 시인이 1982년부터 무려 14년에 걸쳐 70편의 연작시로 완성한 작품이다. 긴 세월 동안 시인은 ‘풍장(風葬)’이라는 독특한 장례 풍습을 집요하게 붙들고 천착해왔다. 풍장이란 우리나라 서·남해 섬 지방 일부에서 행해지던 것인데, 초막(草幕)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한 뒤 나뭇가지나 풀로 덮어 탈골(奪骨)될 때까지 놓아두는 의식을 말한다.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손목시계 부서질 때/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풍장 1> 중에서

지친 내 마음을 열고 물처럼 스며들어온 <풍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뜨겁게 허물며 나를 매혹시켰다. 시인 스스로 풍장을 ‘탈골여행’이라 부를 만큼 이 시집에는 죽음의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들이 전혀 낯설거나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비극적이라기보다는 희극적인 느낌이 강했다. 남동풍을 따라 몰려다니다 어부의 그물에서 수많은 은빛으로 팔딱거리는 멸치 떼처럼, 죽음의 빛깔들이 같은 듯 다른 빛깔로 저마다 일제히 삶의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죽음의 이미지들 속에 삶의 에너지가 펄펄 끓어 넘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서로 부둥켜안고 하나의 뿌리를 향해 경쾌하게 회귀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그의 서문에서 ‘결국 죽음과 삶의 황홀은 한 가지에 핀 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죽지 않는 꽃은 가화(假花)’라고 단언한다. 현재진행형으로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주는 시인의 잠언에 나는 다시 한번 매료됐다. 삶과 죽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며 기발한 상상력에 따뜻한 직관을 담아낸 시인의 언어가 어느 새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허옇게 깔린 갈대 위로 환히 타고 있는 단풍숲의 색깔’을 나 역시 시인처럼 ‘번역’하고 싶어졌다.

친구는 지금 강원도에 있다. 홍천에서 444번 국도를 타고 행치령 고개를 넘다 보면 시냇물처럼 잔잔하고 맑은 계곡에 마치 영혼의 풍장 의식이라도 치른 듯 따뜻하게 깃들어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살랑거리는 바람,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물, 그리고 나지막한 새소리와 훈훈한 햇살에 실려 반짝이는 삶으로 남아 있다.

서문을 마치며 시인은 아직 변치 않고 싱싱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싱싱한 죽음 때문에 더욱 싱싱해진 삶에 감사한다고도 했다. 친구의 죽음을 통해 나 역시 내 삶에 한 발 더 바짝 다가서게 됐다. 이제 친구가 힘들게 겪었던 투병의 세월과 그 속에 쏟아 부은 회한과 그리움의 멍울들을 뒤늦게나마 어루만지며 살아갈 것이다. 살며시 허공에 손을 내밀어본다. ‘바람의 어깨’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