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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향해 도발하는 미술계

임창연 2006. 6. 9. 12:04
[문화]대중을 향해 도발하는 미술계
[뉴스메이커   2006-05-26 09:43:19] 

관람객 투표로 작품 평가받기·재래장 전체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 등

아트 서바이벌전에서 젊은 작가 13명은 자신의 작품이 철거되는 것을 감수하고 작품 평가를 온·오프라인의 관람객에게 맡겼다.
5월 15일 서울 홍익대 근처의 갤러리 숲에 모인 현대미술 신인작가 13명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들이 준비한 ‘아트 써바이벌-더 컷’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의 투표를 거쳐 가장 인기 있는 작품과 가장 인기 없는 작품을 선정한 뒤, 꼴찌 작품을 전시회에서 철거하는 파격적인 형태의 전시회다. 이렇게 한 작가의 작품을 철거하면 1등을 차지한 작가의 작품을 한 점 더 전시한다. 철거된 작품은 구석 창고에 보관한다. 1주일은 생존경쟁 방식으로 열지만 나머지 1주일은 성적을 공개한 채 모든 작품을 전시한다.

젊은작가들 중심 다양한 시도

어쩌면 미술계에 대한 ‘반란’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동안 전문가의 전유물이던 평가를 비전문가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온·오프라인을 통해 자신의 표를 던질 수 있다. 이들이 이런 시도를 한 것은 미술계의 폐쇄된 평가시스템을 공개하고 대중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동안 미술작품의 평가는 소수 전문가에 의해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져 왔다. 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작가들은 묻히고 말았다.

물론 과거의 수많은 거장들처럼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작가 차재인씨는 “예전에는 청년작가라고 하면 50대까지였으나 요즘은 30대 초반으로 낮춰졌다”며 “매년 수만 명의 신진작가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평가가 객관적으로 정립돼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에 대한 기준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 나쁘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대중의 공개적인 평가를 선택했다.

‘킹이랑 미술관 가기’ 행사 ‘눈길’

이들은 이런 방식이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와 이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평론가 등은 일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늘어나고, 결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편이다. 이처럼 미술을 소비하는 이들이 투표를 하면 소비자가 직접 ‘호불호’를 결정할 수 있다. 작가 변득수씨는 “자신이 행사한 한 표가 작품의 탈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통해 일반인의 관심을 미술 쪽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최금수 소장도 이런 점에 주목한다. 최 소장은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함몰돼 작가들끼리도 서로의 작품을 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권위를 내던지고 관람객의 관심 중심으로 전시회를 준비한 것은 특이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스스로 관람객에게 살갑게 다가서려는 젊은 작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경기 안양시 석수시장에서 열리는 석수시장 프로젝트는 미술로 지역주민에게 말을 거는 작업이다. 사진은 갤러리 스톤앤워터 앞에 마련한 전초기지 ‘공공의 수-다방’.
이처럼 미술의 수요층에 다가서려는 노력은 최근 부쩍 늘어난 분위기다. 2002년 보충대리공간을 내세우며 경기 안양시 석수시장에 자리 잡은 ‘스톤앤워터’는 2004년부터 주변인에게 미술로 말을 거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생활 속의 예술 공간을 모토로 내걸고 등장한 스톤앤워터는 초기에는 작품의 유통을 통해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액세서리는 팔렸지만 최저 20만~30만 원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은 판매되지 않았다. 스톤앤워터는 방향을 바꿨다. 박찬응 대표는 “중저가 미술품을 파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저변확대가 아닌가 생각했다”며 “2004년부터 안양천 프로젝트 등 본격적으로 도시에 예술을 침투시키는 작업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석수시장 프로젝트다. 5월 13일부터 5월 31일까지 안양시 석수시장 인근에서 열리는 석수시장 프로젝트는 20세기초 마르셀 뒤샹이 전시장에 갖다놓았던 변기를 돌려주면서 일상공간을 통째로 ‘미술관’이라고 명명, 예술과 일상의 구분을 흐릿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석수시장을 미술관으로 만들려는 계획이다. 행사내용은 석수시장에서 얻은 버려진 물건 등을 이용,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메이드인석수시장’ 등이 중심이다. 갤러리 안의 전시로만 그치지 않는다. 빈 점포를 빌려 만든 ‘공공의 수-다방’이 외부 침투의 전초기지가 된다.

어려운 내용 같지만 취지는 간단하다. 석수시장 주변 작가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술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제고한다는 것이다. 관심이 있어야 예술과 일상 사이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명훈 기획팀장의 생각이다. 그는 “일상은 미술이 없어도 아쉬운 게 없다”며 “그렇다면 미술이 다가서야 한다”고 말했다. 스톤앤워터는 교육예술센터를 세워, 인근 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작가들이다.

작가나 기획자가 제공하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의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미술 전공자들과 일반인 등 4명이 모여 만든 온라인 갤러리 ‘갤러리킹’은 한 달에 한 번 회원을 모아 미술관을 찾아가서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작가와 이야기를 하는 행사 ‘킹이랑 미술관 가기’를 열고 있다. 2004년 8월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벌써 22회째 열리고 있다. 이 단체를 주도한 일반인 출신 정은성씨는 “미술 관련 스터디에서 다른 3명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 사람들은 갤러리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이런 어려움은 스스로도 많이 느꼈기 때문에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감상방법 등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활동을 통해 미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이들은 오는 7월 홍대 앞에 오프라인 갤러리를 마련해 ‘수선전’을 열 계획인데, 여기서 이들은 미술계나 사람의 생각 등을 ‘수선’할 예정이다.

이런 활동은 젊은 작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보여주는 최근의 추세를 반영한다. 이미지올로기연구소 최금수 소장은 “기존 미술계의 바깥에 있는 젊은 작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년 전부터 미술의 창작부터 향유까지 새로운 통로모색을 해왔다”며 “소비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은 최근 젊은 작가가 보이고 있는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