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스크랩] 2월의 햇살

임창연 2006. 4. 8. 00:41


 

제가 햇살을 좋아하는 까닭은
늘 눈부시고 따스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이든 만나면 부딪혀 흡수되기도 하고
자신을 밀어내는 것에는 머물지 않고
멀리 자신을 보낼 줄 아는 것과
막히면 바로 뒤에서 그늘이 되어
말없이 쉬고 있는 모습을 참 좋아 합니다
그중에 그늘이 되어 머무는 광경은
마치 사람과 사람이 만나 기쁜일도 많겠지만
그늘 같은 우울함에도 말없이 견뎌주는 일입니다


가끔은 햇살이고 싶었다
나무를 만나면
그 등 뒤에 기대 앉아서
그늘에 남아
쉬고 싶었습니다.


나무가 보지 않아도 은밀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손끝이 닿지 않아도
마음으로 만지기도 하는 애절함 일지라도
눈 닿는 가까이 머물려는 마음이
어쩌면 햇살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햇빛이 쏜살같이 내려오다
무엇인가에 부딪히면
죽어서 그림자가 됩니다
죽어서 다시 환생하는 어두운 영혼

태어나서 처음 본 모습에
어미인줄 알고 새끼 오리가
각인된 사물을 따라 다니듯
햇빛은 만나 첫사랑을 본뒤
늘 그의 등 뒤를
꼭 껴 안고 삽니다.

 




이제 2월이 2장 남았습니다

 

하지만 겨울의 기다림 끝에 오는 시간이기에
이젠 그대들의 슬픈 떨림들도
강물에 흘려 보내고
들판에 피기 시작한
풀꽃들을 맞아야 합니다

 

때로는 햇살의 부지런함과
그늘의 게으름을 모두 사랑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나 긴 시간들을
모든걸 버린채 맨 몸으로
겨울을 미루나무는 견디었고
지금은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고
까치들은 꼭대기의 자신의 둥지를
부지런히 보수하고 있는중 입니다
가까운 마을에 넓게 퍼진 스모그가
부드러운 안개처럼 산허리를 안았고
바람은 땅위에 남은 추위를
한꺼풀씩 걷어내는 중 입니다

 

2월의 햇살이 유난히 그대를 그립게 하는 아침입니다.

 

메모 :

'창연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디선가 잃어버린 흙 신발들  (0) 2006.04.08
[스크랩] 오늘은 맑았습니다  (0) 2006.04.08
그날 경화역 풍경  (0) 2006.04.07
봄이 참 길겠다  (0) 2006.04.03
삼랑진다리 아래 풍경  (0) 200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