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삼랑진다리 아래 풍경

임창연 2005. 9. 16. 01:45
삼랑진다리 아래는 늘 인적이 드물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리 아래를 오기 전
좁은 다리를 건널때면 마주 지나치는 차들은
서로 닿지 않으려 난간쪽을 향해 바짝 붙어서
한 뼘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나쳤다
도시의 도로를 질주하듯 달리던 차들도
이곳을 지날때면 너무나 겸손한 자세로 건너곤 했다 



삼랑진다리 아래 풍경은
새들이 발자국을 진하게 남길 정도로
너무나 조용했다


소란스러운 건 늘 바람이었다
새들이 남긴 발자국을 지우기도 하고


강물을 힘껏 움켜쥐며 지나치는 바람에
강변은 마치 바다처럼 파도가 일어나곤 했다

 

오전 일찍 오는 날엔 강위로 물안개가
바람에 몸을 가볍게 싣고 돌아 다니는 모습을 보곤 했다

 

봄이면 강 근처 둑에 자라는
쑥이며 냉이 달래를 캘 수 도 있었고
지천으로 널린 보라빛 싸리꽃의 무리를 만난다

 

여름엔 강물이 불어 강버들 허리를 넘고
신발이 흙탕물에 잠기곤 하였다





가을엔 억새와 갈대가 함께
강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바라본다

겨울엔 강변에 강물이 얼어 붙은
얼음장을 차안에서 오래동안 지켜 보곤 했다



올 봄에 지인들과 함께 찾은
내 마음의 사유지는 강 주변 공사로 파헤쳐져
다리 아래는 차도 들어갈 수 없었고
그냥 다리 위에서 멍하니
황량한 풍경들을 바라 보기만 했었다

 

오래 오래 다리 아래서
시간을 보내며 다리를 지나는 차를 세어 보기도 하고
건너편 철교 위를 지나는 기차가 레일 위를 지나며 철커덕 거리는
소리를 아련히 듣기도 하고
바람이 모래사장을 쓸고 지나며 남기는 자욱을
바라 보던 시간들은
이제는 그냥 추억의 공간 한켠에
버려진 건축자재 처럼 남게 되었다

 

언젠가 겨울밤 기차를 타고 지나면서
바라 보았던 삼랑진다리 근처
비닐하우스의 백열등의 여린 불빛이
다리 난간을 흐리게 비추던 기억이
자꾸만 춥게 떠 올랐다

'창연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날 경화역 풍경  (0) 2006.04.07
봄이 참 길겠다  (0) 2006.04.03
序詩  (0) 2005.09.14
[스크랩] 시간을 지우며  (0) 2005.09.09
8월 대문  (0) 200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