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봄에 시 한 편 선물 합니다.

임창연 2010. 4. 17. 17:47

 이 모든 것 / 진은영

 

 

비눗방울 하나가 투명한 기쁨으로 무한히 부풀어 오를 것 같다

장미색의 궁전이 있는 도시로 널 데려갈 수 있을 것 같다

겨울과 저녁 사이

밤색 털 달린 어지러운 입맞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광할한 사랑의 벨벳으로 모든 걸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인 것 같다

배고픈 갈매기가 하늘의 빈 젖꼭지를 심하게 빨아대는 통에

물 위로 흰 이빨 자국이 날아가는 것 같다

 

이 도시는 똑같은 문장 하나를 영원히 받아쓰는 아이와 같다

판자집이 젖니처럼 빠지고 붉은 달 위로 던져졌다

피와 검댕으로 얼룩진 술병이 흰 비탈에서 굴러온다

첫 시집의 변치않는 한 줄을 마지막 시집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청춘은 글쎄...... 가버린 것 같다

수천 개의 회색 종을 달고서 부드러운 날개 하나

천천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가난한 이의 목구멍에 황금이 손을 넣어 모든 걸 토하게 하는 것 같다

초록빛 묽은 토사물 속에 구르는 별들

하느님은 가짜 교통사고 환자인 것 같다

천사들이 처방해 준 약을 한번도 먹지 않은 것 같다

푸른 캡슐을 쪼개어 알갱이를 다 쏟아버리는 것 같다

안녕, 안녕, 슬레이트 지붕의 부서진 회색 위로 눈이 내린다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이 거짓말 인것 같다

달에 매달린 은빛 박쥐들의 날개가 찢어져 내리는 것 같다

 

 

문학과사회 2009년 봄호 (통권85호) p.70-71

 

 

 

 - 무릇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모든 곳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질감들을 표현해 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기를 더디하던 겨울이 지나고

   여전한 생기를 띠고서 봄이  왔습니다

   대지에 숨었던 온갖 풀꽃들이 앞 다투어 온 몸을 밀어 냅니다

 

   여전히 생각의 봇물은 넘치지만 그것을 제대로 담을 그릇이

   사람들에겐 늘 부족한가 봅니다

   글이 안되어도 삶이라도 즐거웁다면

   그리 답답할 일은 아니지요

 

   봄의 기운을 많이 마시고

   그 에너지로 세상을 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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