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책 서평

[서평] 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

임창연 2010. 3. 31. 02:11

  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 / 정상기 / 시디안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기

 

 나무하면 나는 향기를 떠 올린다. 언젠가 한옥을 만드는 사람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무를 켜면 그 향기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한다고... 하물며 향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는 얼마나 향기가 더 할 것인가. 향나무를 삶아서 죽은 사람의 몸을 씻어서 향을 대신 입혀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조각가 정상기씨의 조각이 있는 시집이다. 늘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일하는 그가 부럽기도 하다. 틈틈이 써 둔 글과 만든 조각 작품을 사진과 함께 잘 조화 시킨 시집이다. 사진으로 조작을 감상하고 시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원과 사각의 시간

 

 그의 작가적 출발점은 원과 사각이다.

 

 ‘지구는 네모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 온 우리 조상들이

지금의 둥근 지구를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p.149)

 

 그는 네모는 원 일 수도 있다고 가정을 한다. 자신은 원인 나무를 깎아서 네모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어쩌면 현재에서 멈추어진 과거를 깎는지도 모른다. 둥근 조각칼로 둥근 나무 조각을 떼어 낸다. 그리고 다듬어 커다란 곡선을 만든다. 때로는 사각의 칼로 나무를 밀어서 평평한 사각의 나무 조각을 만든다. 나무는 원기둥이다. 그의 손을 거치면 멈추어진 사각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원은 굴러간다. 그래서 살아 있다. 사각은 구르지 못한다. 그래서 멈추어진 시간이다.

 

 

 

 

  외로우면 글이 되는가

 

 조각가인 그가 왜 틈틈이 글을 남겼을까?

 

 ‘만약! 정말로 만약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 것들이 정해진다면

나의 바램은

나무로 태어나

다시금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p.43)

 

 어떤 사람도 그랬다. 자기도 죽으면 꼭 나무가 되고 싶다고, 왜 사람들은 가끔은 나무가 되고 싶어 할까? 그런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터이지만 사람으로 산다는 게 힘들다는 말일 것이다. 나무는 생각이 없단 말인가? 나는 모르겠다. 아직은 나무의 마음이 되어 보지 않아서 말이다. 늘 나무와 함께하는 그가 나무의 마음을 읽고 나무와 사랑에 빠진 것인가.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것과 가까이 있고 싶어 한다. 나무도 조각가처럼 외로웠을까. 나무에 미처 새기지 못한 말을 그는 틈틈이 나무로 만든 종이 위에다 칼 대신 펜으로 글을 남기는 것은우연이 아닐 것이다.

 

 

 

 

  죽어서 다시 사는 나무

 

 물을 마시고 호흡을 하며 살던 나무가 어느 날 베어졌다. 목이 말라 서서히 죽어 간다. 어떤 나무는 잘게 부서져 흰 종이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나무는 식탁이 되어 날마다 사람들을 앉히고 밥을 먹인다. 어떤 나무는 배가 되어 사람들을 태우고 넓은 세상구경을 하며 다닌다. 어떤 나무는 결국 불에 태워져 물을 데워주고 한 줌의 재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 중에서 조각가의 손에 붙들린 나무는 칼로 몸에 아픈 상처의 자국을 남긴 후에 멋진 예술 혼이 들어가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은 바로 그 나무의 이야기와 시가 들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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