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책 서평

[서평]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임창연 2010. 3. 14. 11:07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장영희 외 / 중앙books

 

 

  [전설적인 작가들의 인터뷰]

 

 ‘우리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란 부제가 붙어있다. 인터뷰 대상은 서정주, 김수영, 한용운, 랭보, 카프카, 죠지 오웰, 이상, 백석 등 국내외 작고한 유명 작가들이다. 장영희 교수를 제외 한다면 유명 현역작가들이 자신들이 만나고 싶은 작가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불러서 질문과 답을 한다. 물론 작가 자신이 자문자답을 하며 그 작가의 목소리를 빌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을 의식해서 흥미롭지만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접근법으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 내용들은 대산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대산문화>에 연재 되었던 것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에이 헤브 선장과 장영희 교수]

 

 2009년 5월 타계한 장영희 교수와 1851년 발간된 허먼 멜빌의 대표작 <모비딕>의 주인공 피큐드호의 에이 헤브 선장과의 인터뷰는 짠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는 남아서 그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장영희 그럼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그 거대한 흰 고래를 쫓았는지 말씀해주시지요.

 에이헤브 그것은 나의 인간적인 도전입니다. 나는 신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 기막힌 불공평함에 대해서, 신은 비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갖고 놉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대로 순명하면서 살지만, 난 그렇게 하기를 거부합니다. 싸우다 죽는다해도 나는 일어나 싸웁니다. (p.10)

 

 작가가 아닌 작품속의 주인공이 작가를 대신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인간은 늘 신에 대해 순종보다는 늘 불복종하고 거스림으로 도전을 한다. 신은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도 인간 스스로 깨달음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한다. 이 인터뷰가 특별히 마음을 때리는 것은 신과 인간의 끝없는 줄다리기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데드마스크의 시대]

 

 작가 이상의 시대가 초기자본주의라면 이 시대는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김승희 시인이 만난 이상은 이 시대의 시인들에게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여기는 어느 나라의 데드마스크다. 데드마스크는 도둑맞았다는 소문도 있다·····.” 그 시를 발표한 건 1936년 10월 9일인데, 사실 지금이 그 데드마스크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데드마스크는 도둑맞았다는 소문도 만발한······ 거미가 돼지를 만났을 때······ 그 위독증세에 정직하게 맞서는 힘을······ 사실 이런 시대에 시인은 ‘나는 이렇게 위독하다’라는 카르테 외에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맺으며]

 

 문학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생명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세상의 시작이 말이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말은 곧 문학의 시작이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말이 없음이다. 하지만 문학은 남아서 말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마지막 인터뷰 주인공인 오규원 시인 유고집 <두두>에 나오는 시로 맺음을 하면서, 또한 이 책을 읽음으로 새로운 문학의 전설에 젖어보는 좋은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전문 (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