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누고 싶은 글

침묵의 세계

임창연 2006. 8. 23. 06:45

 불가에서는 독경하지 않음은 경전의 때요 수리하지 않음은 집의 때라 하여 끊임없는 공부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모든 가르침은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은 것이라 하여 그것을 버리라고도 말한다. 그처럼 책읽기의 의미는 감정의 대리만족이나 지식의 정복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과 세계의 본질로 돌아가 자유를 누리는 데 있을 것이다. 결국 언어란 침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책을 잡는 것은 책을 놓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책은 네모반듯한 면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손에 잡기는 쉽지만 둥근 공처럼 놓치기는 쉽지 않게 생겼다.

 

           나희덕의 산문집 '반통의 물' (창비. 초판 1999, 5쇄 2005)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