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누고 싶은 글

환갑 맞은 ‘청록집’ 시어는 푸르구나

임창연 2006. 7. 2. 16:06
60년전 초판 낸 을유문화사
옛장정 되살려 출간 ‘한국적 서정성’ 복원 의미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인 1946년 6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3인 시집 〈청록집〉이 출간되었다. 일제 통치에서 해방되고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청록집〉의 출간은 단순히 시집 한 권의 출간에 그치지 않는,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청록집〉의 세 시인은 해방 전인 1939년에서 1940년에 걸쳐 정지용의 추천으로 잡지 〈문장〉을 통해 등단했다. 그러나 이들이 등단한 이후 일제는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철저히 말려 죽이려는 말살책을 밀어붙였다. 〈문장〉이 1941년에 폐간되었으며, 시인들은 작품을 발표할 공간이 없었다. 골방에서 몰래 시를 써서는 들키지 않을 곳에 감춰 두어야 했다.

  
그렇게 몰래 써 두었던 작품들이 〈청록집〉에 갈무리됐다. 따라서 합동시집 〈청록집〉의 출현은 민족 해방의 문학적 표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기 실린 39편의 시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높인 명편들이 아니었겠는가.

“머언 산 청운사/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청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박목월 〈청노루〉 전문)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조지훈 〈승무〉 앞부분) “산새도 날아와/우짖지 않고,//구름도 떠가곤/오지 않는다.//인적 끊인 곳/홀로 앉은/가을 산의 어스름.”(박두진 〈도봉〉 앞부분)

인용한 작품들말고도 〈윤사월〉 〈나그네〉 〈산이 날 에워싸고〉(이상 박목월), 〈고풍의상〉 〈낙화〉 〈고사 1〉(이상 조지훈), 〈묘지송〉 〈푸른 하늘 아래〉(이상 박두진)를 비롯한 수록작들은 이후 한국적 서정시의 전범으로서 후배 시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씨는 이런 맥락에서 “〈청록집〉 출간이 문학사적 사건을 넘어 문화사적, 정신사적 의미를 획득하는 핵심은 ‘서정의 상실’에 대한 거부이고 저항에 있다”고 평가했다.

〈청록집〉 초판을 출간했던 을유문화사는 이 기념비적인 시집의 출간 60돌을 맞아 시집을 다시 펴냈다. 일종의 회갑 잔치인 셈이다. 기념시집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초간본 그대로를 실은 부분과 현행 맞춤법에 맞게 엮고 해설을 곁들인 부분이 그것이다. 초간본 부분에는 〈지용 시선〉 광고와 〈상화 시집〉 〈석초 시집〉 근간 안내까지 들어 있다. 표지는 김의환 소묘에 김용준 장정인 초간본 것을 그대로 가져와 옛 멋을 살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같이 나누고 싶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 연 / 이원규  (0) 2006.07.09
그리움엔 길이 없어 / 박태일  (0) 2006.07.08
상사화(相思花)  (0) 2006.06.21
석산  (0) 2006.06.21
황동규 시인 열세 번째 시집 <꽃의 고요>  (0) 200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