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임창연 2006. 4. 19. 23:13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

 

비가 오지 않아도

그녀가 눈물을 닦지 않아도 맺혀진 그렁거림에

내 마음이 먼저 메이고

 

대숲이 바람의 입을 빌어 말을 시작할 때

나는 입을 닫아야 했고

소심한 참새들은 대숲에서 숨죽이며

비를 기다리고 있었고

 

빗방울이 하나 둘 택시 유리창을 먼저 닦고는

길을 밟기 시작한다

 

     - 현 빈 -

'창연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 아파 하는데  (0) 2006.05.05
가고 오는 길  (0) 2006.05.05
뻘 같은 그리움 / 문태준  (0) 2006.04.17
[스크랩] 봄 잘라내기  (0) 2006.04.08
[스크랩] 어디선가 잃어버린 흙 신발들  (0) 200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