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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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아도
그녀가 눈물을 닦지 않아도 맺혀진 그렁거림에
내 마음이 먼저 메이고
대숲이 바람의 입을 빌어 말을 시작할 때
나는 입을 닫아야 했고
소심한 참새들은 대숲에서 숨죽이며
비를 기다리고 있었고
빗방울이 하나 둘 택시 유리창을 먼저 닦고는
길을 밟기 시작한다
- 현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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