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소리가 나다

임창연 2010. 8. 29. 10:19

 
 시작은 그러하겠습니다


천지창조같은 작은 울림으로

문을 두드려

이야기가 시작되겠습니다

 


화려하게 부서지는 빛의 폭포도 아니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하게 젖기도 하겠습니다


모기향처럼 작은 빛으로 타면서
가지런히 흔적을 남기기도 하겠습니다

바다에 잠기겠으나

사막처럼 끝없는 갈증으로 목이 마르지만

끝내 오아시스는 없겠습니다

 

 


울림들이 점차

마음에 바람같은 길을 내면서

풍문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꽃처럼 수없이 피었다 지지만
아름다움을 잃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잡히지 않아
열매의 맛을 볼 수도 거둘 수도 없겠습니다

 

 

 


옷걸이에 걸어둔 화려한 정장이

스러져 먼지가 될때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아도
손 끝의 아린 상처로

마음을 베이기도 하겠습니다

심장의 근원이 막혀

멈추기도 하겠지만 죽지는 않겠습니다

아픔이 끝나도 흉터는 없겠으나

끝내 지워지지는 않겠습니다

끝없이 기다리며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입을 열고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열고서도
시간까지 열어 두겠습니다

 

 
아련한 시간들이

흐르고 흐르는 가운데

말도 따라 흐르다 멈추면
물처럼 고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덩달아 주저앉고 말겠습니다


전설처럼 시작하여 소문이 되기도 하고
역사처럼 남을까하여 문장으로 쓸까 하겠지만
소리로 터지는 순간 노래가 되어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려 손에 잡히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처럼 멈춤의 끝은 없겠으나

말이 없음으로

이야기도 문이 닫히고 말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이름만 남고

소리의 기억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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