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자귀나무처럼 늘 잠들고 싶어

임창연 2010. 7. 6. 19:53

   자귀나무 

 

 산과 들에서 자라며 관상수로 심기도 한다. 키는 5~15m에 이른다. 미모사가 잎을 건드리면 움츠러들듯이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서로 포갠다. 잎은 줄기에 하나씩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까시나무처럼 작은 잎들이 모여 하나의 가지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줄기에 달린다. 이것이 복엽이다. 대부분의 복엽은 작은 잎들이 둘씩 마주 나고 맨 끝에 잎이 하나 남는데, 자귀나무는 작은 잎이 짝수여서 밤이 되어 잎을 닫을 때 홀로 남는 잎이 없다. 그래서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가 자귀나무 잎을 무척 좋아해서 소쌀밥나무라고도 부른다. 6~7월이면 가지 끝에 15~20개의 작은 꽃이 우산 모양으로 달리며 기다란 분홍 수술이 술처럼 늘어져 매우 아름답다. 9~10월에 익는 열매는 콩과 식물답게 콩깍지 모양이다. 금세 떨어지지 않고 겨울 바람에 부딪혀 달가닥거린다. 이 소리가 시끄러워 여설목(女舌木)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군대 가기 전에 안양에서 클래식 디스크 플레이어를 한 적이 있다.

보통 대중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을 디 제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클래식을 들려주는 사람들은 디스크 플레이어라고 구분해서 불렀다.

 

그때 자주 놀러갔던 현대다방이란 음악다방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가끔 들러서 이야기를 하곤했는데 제주도에 별장을 지어 놓았다고 했다.

그러길래 신혼부부에게 먼저 안방을 빌려주면 거기 살게되는 사람도

부부금슬이 좋아진다고 말했더니 내가 신혼여행 오게되면 필히 빌려 준다고 그러셨다.

정말 시간이 지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지만 이 사실은 나도 잊어버렸다.

내가 근무하던 클래식 다방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할 때마다

스폰서를 해 주셨던 분이셨다. 아마 지금은 할머니가 되셨을거다.

 

그때는 겁도없이 정말 젊음의 열정으로 그런 일을 한 것 같다. 

전문가들도 많았는데 어쩌면 음악의 문외한인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클래식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까닭이었다.

군 입대를 하기 전까지 기억나는 음악회 프로그램은 

 

로스트로 포비치의 첼로의 밤

다비드 오히스트라흐의 바이올린의 밤

정확하지는 않지만 호로비츠의 피아노의 밤을 했던 것 같다.

음반을 중심으로 연주자의 밤을 했었다.

아마 마지막으로는 보자르의 피아노 삼중주의 밤을 끝으로 네 번의 감상회를 하고서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책을 스폰서 해 주신 서점 사장님, 음반을 스폰서 해주신 레코드 가게 사장님,

프로그램 인쇄를 공짜로 해 주신 인쇄소 사장님, 경쟁 가게이면서도 스폰서 해 주신 다방 사장님,

음료수를 무료로 제공해 주신 근무하던 다방의 사장님

음악감상회를 하고서 무료로 음료수도 마시고 추첨을 통해서 선물도 가져 간 그때 안양의 음악 매니아들

지금이라면 참 힘들겠지만 정말 순수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때 서라운드란 개념도 없었는데 어디에 앉아도 음악이 잘 들릴 방법이 없을까하여

네 코너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어디에 앉아도 잘 들릴 수 있게 만들었던 기억도 난다.

클래식은 그냥 들려주기만 하면 되었는데 일일이 약간의 해설을 하면서 들려 주었던 기억도 난다.

그냥 좋아서 한 일 이었기에 나날이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때 멀뚱하게 보이고 얼굴은 하얗고 키도 무척 컸던 민후라는 현대다방의 디 제이 형이 생각난다.

그때 디 제이들은 인기가 많았다. 그 다방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고 실력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홀로 사모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그 형을 좋아하다 못해 

짝사랑하여 약을 먹고 음독을 한 여자가 있었고 그게 죄가 되어 억지로 문병까지 가게되자.

겁이나서 혼자 못 가고 병원에 같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아가씨는 휴가때 나오니

다른 사람의 팔에 매달려 행복하게 데이트를 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랑도 열정적으로 하는 아가씨 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민후형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형이 1979년에 발매된 Pink Floyd의 Album : The Wall (Disc 1,2) 중에서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1)>을 틀어 놓고 흥분해서 멘트를하며 들려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사랑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추억처럼 변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고 장기려 박사는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며 90평생을 혼자 살면서

그 지순한 사랑의 순애보를 간직하고 이웃사랑에 헌신하였던 분이셨다.

자귀나무를 생각하면 그 분의 변함없는 사랑이 생각난다.

 

자귀나무의 잎은 밤이면 서로의 짝을 찾아 모아서 밤을 지샌다.

나도 늘 살이 부딪히며 밤마다 잠이 드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아마 두 사람의 사랑이 그러하다면 결코 꿈은 아닐 것이다.

일생의 시간 중에 잠드는 시간이 3분의 1 이상인데

그런 꿈은 당연한 작은 욕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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