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생각하는 의자들

임창연 2010. 7. 9. 16:38

 

의자는 나무가 자신을 쉬게하는 곳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쉬는 곳이지만

늘 서 있던 나무가 앉아서 쉬는 것이지요.

 

가끔은 사람보다도 이렇게 가방도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꽃나무 아래 의자가 있으면

공중에 떠 있던 꽃들에게도 몸을 뉘는 장소가 되지요

공간에서 어지럽게 흔들리다가 이렇게 쉬면

참 편안할 것 같습니다.

바닥 아래 나무가 깔리고 그 틈새로 풀이 자랍니다.

그 나무 위에 철재 의자가 쉬고 있습니다.

 200년 된 소나무 곁에 그 보다 어린 나무들이 의자가 되어

늙은 소나무가 앉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이 내린 날 플라스틱 의자들이 날씨를 미리 알았다는 듯이

따스하게 모여 안고서들 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홀로된 의자지만 내린 눈을 잠시 쉬게하니

그리 추워 보이지 않습니다

젊은 등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어르신 의자들을 쉬게해 줍니다

 

 

 날씬하고 모던한 의자들이 커피를 주문하고

도란거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빌딩의 불빛들도 도란도란 속삭이는 밤입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 온통 온 몸이 붉게 탄 듯 합니다.

자전거 주인이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 말라고

벤치 곁에 세워 주었습니다

거리를 오가며 보았던 이야기를 제자리만 있는 벤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테고

벤치는 자전거에게 여기 앉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겁니다.

영화이야기라면 이 의자들이 전문가입니다

아마 영화이야기라면 영화평론가 보다 많이 보았으니

장면 장면 다 기억을 담아 두었을 겁니다.

 

어느날은 단 한 명의 관객과 수많은 의자가 함께 영화를 본 날도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여러 나무가 함께 모였으니 사람이 없어도

그리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도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앉히고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벤치도 쉬어야 합니다

서서 오랜 세월 또 앉아서 오랜 시간

이제는 영원히 쉬어야 겠지요

 

근사하게 가죽 옷을 입은 멋쟁이 의자도 있습니다

여기에 앉으면 마음도 우아해 질 것 같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 제격입니다

 

사람도  쉬고 발도 쉬고

이제 집으로 가야겠지요

 

마지막 전철이 손님을 다 내리면

전철의 긴 의자들은 오늘도 수고했다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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