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책 서평

우리는 CCTV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까? - ‘성탄 피크닉’ / 민음사

임창연 2010. 1. 9. 00:55

우리는 CCTV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까?

 

장편소설 ‘성탄 피크닉’ / 이 홍 / 민음사

 

 

 

   압구정동의 낡은 아파트 608호

 

 CCTV는 압구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감정없는 감시용 카메라를 빌려서 무덤덤하게 소설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빠른 속도로 현재와 과거를 마치 영화의 화면처럼 넘나든다. 70년대 후반에 지어진 32평의 아파트. 그 수명이 다하여 재개발을 앞둔 서울의 위치만으로도 강남이라는 프리미엄이 있다. 그 대단위 아파트 그 중 608호라는 부모의 손을 벗어난 세 남매가 사는 곳. 첫째 은영, 둘째 은비 자매 그리고 남동생 은재가 자고 깨는 곳이다. 이야기의 시점은 2009년 12월 24일 22시 11분. 각자 붉은 골프가방과 연두빛 트렁크 그리고 막내는 검은 배낭을 메고 나선다.

 

    조지오웰과 백남준

 

 CCTV를 생각하면 조지 오웰(Eric Arthur Blair 1903~ 1950)이 1948년에 집필한 소설 [1984]를 떠올리게 된다. 백남준은 84년 1월 1일. 전 세계 2400만 시청자들에게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 작품은 <1984>라는 책에서 조지오웰이 미디어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예언했던 것을 반박했다. 대신 전 지구적 소통의 매체로 활용될 수 있는 미디어의 낙관성을 피력했다. 백남준의 낙관론이 안전과 보호를 말하다면 오웰의 우려대로 감시와 통제라는 역할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집안을 나서서부터 엘리베이트, 주차장, 경비실 드나드는 출입문 그리고 골목길과 큰 길과 자동차도로 또 전철 안, 편의점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CCTV는 보고 있는 것이다.

 

   CCTV의 눈

 

 소설은 15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장의 마침에는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2009. 12. 24. 22:11에 시작해서 2009. 12. 25. 02:17에 마무리를 한다. 그 중간에 2005년 그 세 남매의 가족이 로또에 당첨되어 압구정에 들어오고 아버지의 외도로 결국 가족이 해체되고 세 남매만 608호에 머물게 된 과정을 짧게 소개한다. 로또의 대박은 소설 밖의 현실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졸부들의 몰락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 또한 여지없이 그 길을 밟는다. 계획없던 사소한 싸움으로 시작된 일이 토막살인으로 세 남매가 공범이 된다. 살인이 아닐지라도 그들의 몰락은 오는 중인데 가속화 되고 만 것이다. 작가는 그 몰락의 과정을 CCTV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디오를 틀어주듯 담담하게 보여준다.

 

   물질과 문명

 

 강남이라는 지역의 부와 권세의 상징. 그리고 CCTV라는 문명이 공존하는 현실. 두바이에 세워진 ‘부르즈 칼리파’처럼 물질은 인간에게 결코 행복만을 주지는 않는다. 물질은 돈으로 세우는 바벨탑이다. 언제든 스스로 무너지기 쉬운 숫자놀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물질을 보태고 돈을 먹여야만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젊은 작가의 예리한 눈으로 한국사회의 물질을 향한 욕망의 허상을 해부한 소설이다. 작가가 던지는 진지하고도 재미난 성탄 피크닉. 여러분의 손에는 어떤 가방을 들고 떠날 것인지 한번 기대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