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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시집 소개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황시은 / 시선사

임창연 2008. 11. 27. 20:01

 

 

 

 

 '난 봄이면 입덧을 한다' (시선 시인선 050). 황시은 지음 | 시선사 펴냄.

                                  정가. : 7000 원 / 2008년 11월 27일 발행  

 

 


 


 

  빛과 어둠의 시학  / 이재창(시인)



 


  황시은 시인의 시 속에는 다양한 읽을거리가 존재한다. 그 읽을거리는 다름 아닌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부분과 현대적 삶의 양식의 비교를 통해 그만이 가지는 언어로 시인 자신의 독특한 발성법을 내보인다. 일상적 삶의 언어를 가차없이 시적 언어로 환치시키는 그의 문학적 능력은 대단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언어의 기능은 원래 표현적이다. 그것은 원래 놀라움의 표시이거나 배고픔의 호소, 사랑과 미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그 안에 존재의 신비를 담고 있고, 사물과 감성을 움직이는 힘을 담고 있다. 문학에서도 사물의 하나 하나를 지시하는 기호들과 그 기호들이 배치되는 등질적 공간을 매개로 사물과 관념이 관계 맺었을 때, 인간의 관념 또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형성하게 되고 거기서 문학적 대상을 선별함과 동시에 시적 영감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모든 형태의 문학적 의식은 개인과 사회적 환경 사이의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균형관계를 유지하며 생성된다. 이처럼 그의 시적 언어는 물 흐르듯이 고요하게 흐르다가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큰 소리를 내며 이 시대 삶의 자유분방하고 격렬한 몸짓으로 변화한다.

 

  최근 우리시의 대부분이 도시를 떠나 속속들이 자연으로 돌아오고 있다. 메마르고 황폐화된 도시의 삶에 지친 시적 영혼들이 때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 강과 산과 바다로 영감의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떠남의 형태는 다양하다. 주말여행이나 산행 그리고 어느 시인처럼 바닷가 우체국 옆에 아주 이주해 살아버리기도 한다. 그만큼 바다는 자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겐 친숙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센 바다가 있는가 하면 낚싯배 드리우고 한가로이 즐기는 잔잔한 바다도 있다. 또 우리의 아침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의 동굴이며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죽음의 동굴로 비유될 수 있는 도시의 바다도 있다. 그 바다에는 사랑과 증오,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 좌우의 이념, 일상적 생존이 모두 함유되어 있다.

 

  또한 문학에 있어서 역사적인 기억과 유년의 기억이 없다면 예술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잃어버릴 것이다. 여러가지 형태를 갖춘 문학구조 속에서 벗어나 우리 인간은 과거와 함께 문학적인 대응도 순수상태로 주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연과 역사 속에서 문학의 직접성과 관습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숭고하고 광활한 것에 대해서도 미적 체험이 가능해 짐에 따라 자연현상은 아름답게 보이면서 문학적 의식이 싹트고 다양한 상상력이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황시은의 시는 이러한 다양한 문학적 대응과 상상력이 돋보인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응시와 교감이 다소 생경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시인 자신의 삶과 체험에 대한 시적 표현들이 서정성을 획득하면서도 낯설게 보이는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시적 낯설음은 참신하고 개성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름이 낯선 만큼 시의 낯설음도 신선하고 시적 대상에 대한 갈등과 양심적 고뇌가 독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지난달 종양 수술을 받은 큰 언니의 목에선 새 살이/수양버들 연한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다”(「봄의 안부」)나 “여든 다섯 해 동안/손등에 그려 넣은 검버섯들/그 포자가 내 몸속에 옮겨져/발아 중이다”(「김치화석」)에서처럼 빛과 어둠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람이 지나는 곳에는/길들이 만들어지고/새소리 지나는 곳에는/길들이 열린다”(「새소리도 길을 만들며 날아간다」)에서는 현대적 삶의 생성과 소멸의 상상력을 던져준다.

 

  또한“눈 가리개 몽땅 빼앗겨 버린 보도블럭, 그 위 가로수들/잘 발려진 식육점 고기 모습으로 드러눕는다/나도 몸 속 수분 60%를 몽땅 빼버리고 진열장 사골꺼리로 눕고 싶다”(「오후 세시, 그늘-그림자」)에서는 우리의 관습의 거부를 통해 복잡다기한 현대문명의 정신적 긴장과 스트레스를,“먹물주머니를/난도질 쳐 낼 것 같았던 나의 용기는/들찔레꽃 할머니의 하얀 광목저고리를 보는 순간/주름진 여인네의 자궁 속 양수가 되어 문장을 낳고 있었다”(「시야, 놀자 - 김달진 문학관에서」)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몸소 문학적 체험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출처 : 좋은 시를 찾아
글쓴이 : 글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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