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누고 싶은 글

안도현 시인 아홉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펴내

임창연 2008. 1. 23. 09:16

 

군침 돋우는 음식 노래… '시(詩)의 밥상'이 자아를 깨운다

 

 

  • 안도현 시인 아홉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펴내
    59편 가운데 22편 먹고 마시는 얘기 전작 '연어'의 따뜻함 넘는 신선함
    쏟아지는 강연 부담 덜어버리려 최근 백담사 만해마을로 '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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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현(47·우석대 문창과 교수)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를 펴냈다. 시집은 전에 없던 음식 노래로 가득하다. 수록된 시 59편 가운데 22편이 먹고 마시는 얘기다. 입맛을 돋우고 군침이 솟아나게 하는 안도현 시의 새로운 풍경이 시의 밥상 가득 펼쳐진다.

    이번 시집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년)에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민중시인적 태도와, 지난 해 100쇄를 돌파한 우화소설 '연어'(1996년) 등에서 보여주었던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의 시선을 모두 넘어서는 신선함을 담고 있다.

    '내장은 무 넣고 자박하게 볶아서 이웃 아저씨들 불러 아버지 술안주로 내고, 다리 살은 프라이팬에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 먹고 삶아 먹고'('염소 한 마리' 일부),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일부).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양분 섭취 이상의 그 무엇이다. "음식이란 게 기본은 미각이지만 그것을 느끼기 위해 시각과 후각도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먹는 이의 고마움도 담겨 있으니 모든 감각과 감정의 총화이지요."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준 무말랭이를 떠올리며 시인은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주름살을 먹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 눈 덮인 백담사 만해마을에 들어간 안도현 시인은“집필 구상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갖겠다”고 말했다. /인제=김태훈 기자

    •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중략)//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후략)'('무말랭이')

      시인은 전주의 집을 떠나 최근 백담사 만해마을로 들어갔다. "모질게 마음먹고 물리쳐도 매달 10~20번은 하게 된다"는 강연 부담도 털어 버린 은둔이다. "'연어'의 속편을 쓰기 위해서"라면서도 그는 "일상에 치여 없어져버린 것 같던 나를 돌아보고 싶었다"며 눈 덮인 설악산 자락을 천천히 걸었다.

      '전주 누옥에서 백담사 만해마을까지 과속을 일삼아 달려왔으니 무릇 짐승의 그것처럼 뜨거워졌겠다 싶은 두 발을 계곡물 속으로 밀어넣는다'('탁족도(濯足圖)' 일부)

      음식을 통해 감각의 복원을 시도하는 그의 시는 자아 찾기를 넘어 자연회귀의 갈망으로 확대되고 있다. 16층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 밖에 정지 상태로 떠 있는 황조롱이 한 마리, 실상사 옆 계곡에서 듣던 물소리가 그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요구한다.

      '나는 낡아가는데,/ 그는 오만한 독학생 같다/ 세상의 책에다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있다, 밑줄 같은 건/ 먼 산맥의 능선과 굽이치는 강물에다 일찌감치 다 그어두었다는 듯/'('공부' 일부), 사람이 죽어도 고요한 세상을 꿰어차고 가는 물소리여,/ 내가 밑줄 그어놓은 모든 책의 페이지를 하얗게 지우는구나'('곡비'(哭婢) 일부)

      박형준 시인은 시적 이미지로 차려낸 안도현의 밥상이 "생명의 원시성을 회복하기 위한 공부" 또는 "다시금 삶을 회복할 수 있는, 내적 삶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 김태훈 기자 (만해마을(인제)) scoop87@chosun.com 
      입력 : 2008.01.21 00:52 / 수정 : 2008.01.21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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