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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태준<<<맨발로 뛰듯 힘든 삶을 살았을지라도...

임창연 2006. 5. 9. 04:49

맨발로 뛰듯 힘든 삶을 살았을지라도…



맨발로 뛰듯 힘든 삶을 살았을지라도…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
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
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이는 문태준 시인이 쓴 ‘맨발’에 나오는 시문이다. 시 전문 가운데 절반만 옮긴 것인데 그런데도 시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개조개 한 마리를 지켜보면서, 그가 어떻게 세상을 구경하고 있고 또 어떻게 험난한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생물학자 같이 개조개를 실험체로 대하며 관찰한 것은 아닌 듯 하다. 그 걸음걸이가 일자형인지 뒤뚱뒤뚱 걷는지, 아니면 옆으로 걷는지, 또 몇 걸음 만에 쉬고 다시금 일어서 걷는지 등등 숫자를 헤아려가며 머릿속으로 꼼꼼히 따진 것은 분명 아니다.

그저 개조개가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며, 시인은 지켜본 것이다. 그래서 그가 걸어가는 것이 단순생명체가 걷는 길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위해 걷는 걸음, 또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헤어지듯이 그런 걸음걸이로 받아들이며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시 뒷부분으로 갈수록 ‘맨발’은 그저 개조개 한 마리가 알몸을 드러내며 걷는 걸음걸이가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그 험난한 걸음걸이임을 느낄 수 있다. 열 자식들이 젖을 달라고 밤낮 허덕이고 있고, 그 자식들이 움막 같은 집에서 칼잠을 자고 있으니, 어찌 부모된 이가 그 발이 부르트도록 맨발로 뛰어다니며 일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그 ‘맨발’을 이야기하자니 언뜻 시골 생각이 떠오른다. 그 옛날 검정 고무신이 너무나 귀하고 귀할 때 시골 아이들이 그것을 들고서 학교에 갔다는 이야기. 그 검정고무신이 달아 질까봐 너무나 아끼고 아낀 나머지 좀체 신발은 신지 않고 그저 그것을 들고 맨발로 학교를 다녔다는 것.

문태준 시인이 쓴 《맨발》이라는 시집에는 그렇듯 그 옛날 시골 풍경과 정겨움들이 묻어나고 있어서 무척 살가운 느낌이 든다.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글어 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68쪽, '역전이발' 중에서)

‘역전 이발’이란 시인데 역시 전문은 아니고 절반만 옮겨 본 것이다. 이 시를 엿보아도 금방 작은 읍내에 자리 잡고 있는 역이 떠오르고, 그 역전 철길 위에 이름 모를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나 있고,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위험도 모른 채 철길을 건너가고 있고, 또 역 맞은편에는 다방이 하나 둘 자리 잡고 있고, 대낮에는 그 역전 이발소에서 심수봉과 이미자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도심 속에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시골 작은 읍내에서나 펼쳐져 있을 멋진 풍경이다.

그 밖에도 ‘모닥불’이나 ‘화령고모’, ‘우물이 있던 자리’, ‘장대비 멎은 소읍’, ‘맷돌’, ‘대나무 숲이 있는 뒤란’, ‘뻘 같은 그리움’ 등에서도 그 멋스러운 시골 풍경과 그 속에서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 냄새를 곧잘 맡을 수 있다.

모름지기 문명과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 사이가 좀더 좁아지고 있는 듯 하다. 그 옛날 “찬비에 젖은 머루 같은 눈망울들”을 둔 자식들이 있었고, “대낮에 불어 닥치는 눈보라가”가 처자식 발가락을 모두 얼얼하게 만들었고,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에 벌써 해는 져서 자식들은 배고픈 채 잠들어야만 했던 그 시절에는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또 정을 나누는 일들이 많았다.

“똥장군을 진 아버지가 건너가던 배꽃 고운 길이 자꾸 보이는 것이었다
땅에 묻힌 커다란 항아리에다 식구들은 봄나무의 꽃봉오리처럼
몸을 열어 똥을 쏟아낸 것인데
아버지는 봄볕이 붐비는 오후 무렵 예의 그 기다란 냄새의 넌출을 끌고
봄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곤 하얀 배밭 언덕 호박 자리에 그 냄새를 부어
호박넌출을 키우는 것이었다.“(51쪽, ‘배꽃 고운 길’ 중에서)

“나의 그리움이 누구 하나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아닌지 모른다
물빛처럼 평등한 옛날 얼굴들이
꽃나무를 보는 오후에
나를 눈물나게 하는지도 모른다”(74쪽,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날’ 중에서)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이해관계가 아니면 도무지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힘겹게 살아 왔지만 그전에는 그래도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끌리는 대로, 서로 오고가며 먹을 것도 나누고 정도 나누며 살았다. 비록 헐벗고 굶주리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맨발로 뛰듯 힘든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 옛날에는 서로 나누고 서로 보살펴 주곤 했다. 어떠한 이해타산이 없어도, 다른 집 자식들을 제 자식처럼 아껴주며, 먹을 것도 나누곤 했다.

그런 모습들이 요즘엔 깊은 산 속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진귀한 일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니 사람 사는 정과 그 깊은 냄새를 맡고 싶거든 이 시집 한권을 들고서, 그 진하고 풋풋한 향기에 깊이 빠져 보지 않겠는가.

출처 : 안 개 섬
글쓴이 : 안개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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