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막내와 詩

임창연 2010. 5. 29. 09:47

 

5월이 끝나는 나의 화두는 때죽나무이다.

그 꽃의 향기를 맡으며 출근하고...

 

향기를 가슴에 품고 퇴근을 한다.

신부의 드레스에 달린 레이스꽃처럼

신부는 없고 향기만 남았는데

그 향기마저 이제는 스러져간다.

 

막내를 만나러 가는 버스터미널에서

맹인 안내견이 주인과 버스를 기다린다.

혹 누가 실수로 자기의 발을 밟아도 으르렁 거리지 않는다.

오로지 주인을 다치지 않게 안내하는 일이 전부이다.

순한 눈이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 번은 만나고 싶었는데 그 행운을 누린 날이다.

 

잠시 15분 멈추어가는 휴게소 가장 가파르다는 추풍령이다.

그래서 구름도 잠시 쉬어가야 한단다.

하물며 사람이야 발걸음 멈춰야하지 않겠는가. 

 

버스 안 그물망에는 늘 읽을 책이 담긴다.

끌림이라는 이병률 시인의 사진기행집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컨셉과 비슷하다.

하지만 내 책은 잠시 미루어졌다.

잠시 멈추는 것이 더 멀리 나간다는 지혜를 얻는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포도밭,

겨우내 엎드려 침묵하더니

뜨거운 열매를 감추었다.

초록빛 날개를 조금씩 달아내고 있다.

곧 달디단 과육과 즙을 자랑스럽게 낼 것이다.

입안에서 와인이 고인다.

 

이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잠시 미루어졌을 뿐이다.

기다린 만큼 더 기쁨이 클 것이다. 

 

이곳에 가서 이 장면을 꼭 찍고 싶다.

산토리노섬 쪽빛 바다가 눈 앞에 어른 거린다.

아이들과 함께 꼭 가고 싶다. 

 

사랑한다.

영신, 혜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들...

 

막내 혜신이

영신이랑 애슐리 갔을 때

'아버지 다음에 꼭 혜신이랑 같이와요' 했는데

다행히 그 약속을 일찍 지키게 되었다. 

식당에서 천천히 3시간 동안 식사를 하며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길한다.

참 다행이다. 영신이도 그렇고 아버지를 친구처럼 생각해주는 게 고맙다.

1박 2일 부산에서 세미나가 있었는데 취소를 하고 나와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영화 '시' 를 함께 보기로 하고

잠시 시간이 남아 둘이서 근처 반디앤루니스에서

막내는 '꿈꾸는 다락방'을 읽고

난 전경린의 '풀밭위의 식사'를 읽었다.

전경린다운 내용이다. 하지만 문장은 꽤 성숙해 있다.

좋게 말하면 절정기이고 문장이 시적으로 많이 매만져져 있다.

내용은 전경린이 주로 다루는 세속적 사랑이다.

사랑도 요리처럼 요리사에 따라서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천박하게도, 우아하게도, 달콤하게도, 매콤하게도 만든다.

또 담아내는 그릇과 장소에  따라서는 고급이되고  싸구려가 된다.

레스토랑과 시장바닥에서 먹는 음식처럼 엄청나게 달라진다.

공지영표, 신경숙표, 전경린표 잘 나가는 트리오.  

 

버스로 시를 보러 가는 길

버스가 흔들리고

시간이 흔들리고

하루를 온전히 아이와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나처럼 저희들도 아이들과

이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영신이는 혼자 서울을 갔다.

내일 남산에서 유니세프 주최 어린이돕기 맨발 걷기에 참가한단다.

 

사는 것처럼

진솔한 마음을 담아낼 때

감동을 줄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또 하나의 소음이 될 뿐이다.

 

  -  by 창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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