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 조은길
바다를 조립하고 남은 못 부스러기
고래들의 오랜 군것질거리
널 두고 사람들은 뼈골에 좋다며
첨벙청범 그물자루를 던지고
무심한 운명론자들은
운이 나쁜 것들
꽃밭의 잡초 같은 것
광야의 하루살이 같은 것
쯧쯧 혀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발가벗고 흘레붙는 어미아비를 보지 못했고
제가 찢고 나온 피 묻은 어미자궁을 기억하지 못하니
납득할 만한 과거도 미래도 없다
다만 살고 싶고
천장에 거꾸로 처박혀서라도 살아남고 싶은
엄연한 현재만 존재할 뿐
폭풍이 와장창 부숴놓고 간 바다기둥에
못 꾸러미를 쏟은 듯
촘촘히 밀려와 박히는 멸치들
바다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짱해진다
시와반시 2009년 봄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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