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누고 싶은 글

멸치 / 조은길

임창연 2009. 4. 17. 00:28

멸치 / 조은길

 

 

바다를 조립하고 남은 못 부스러기

고래들의 오랜 군것질거리

 

널 두고 사람들은 뼈골에 좋다며

첨벙청범 그물자루를 던지고

무심한 운명론자들은

운이 나쁜 것들

꽃밭의 잡초 같은 것

광야의 하루살이 같은 것

쯧쯧 혀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발가벗고 흘레붙는 어미아비를 보지 못했고

제가 찢고 나온 피 묻은 어미자궁을 기억하지 못하니

납득할 만한 과거도 미래도 없다

다만 살고 싶고

천장에 거꾸로 처박혀서라도 살아남고 싶은

엄연한 현재만 존재할 뿐

 

폭풍이 와장창 부숴놓고 간 바다기둥에

못 꾸러미를 쏟은 듯

촘촘히 밀려와 박히는 멸치들

 

바다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짱해진다

 

 

 시와반시 2009년 봄호 p.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