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쑥 개쑥 박태일
팔령치 넘어 전라도 전라도 지나 지리산 뜻 높은 절집에 뜻 높은 스님은 없고 뒤듬바리 벅수 짝으로 번을 선 곳 실상사 건너 상황에 가자
닥껍질 삶은 물이 돌돌 도랑을 데우는 골짝 마을 이름도 성도 자식 없어 나선 시집살이 욱동이 동생 친정 일도 드난살이 삼십여 년 홀로 조금밥 헤며 다 솎아버린 조씨 할머님은 마당귀에 다소곳 숨이 죽는 약쑥을 보면서 콩나물시루 삼발이 마냥 굽은 허리로 집안을 도시는데 한 해 한번 마을에 약쑥 공양 베푸시는 할머님 머리 검불 허연 귓가로 앞집 며느리 새로 치는 꿀벌 소리가 저승마루인 듯 아득하게 이엉을 얹고 장독대 함박꽃 둑 지는 날 테메운 몰두무 곁으론 지난해 장대비 소리 다시 후드득 눈 따갑네 이 봄날 손금을 파고드는 따뜻한 쑥뜸 연기 할머님 저녁 끼니는 어떠실는지.
박태일 시집 [약쑥 개쑥 ]p26
박태일
1954년 경남 합천 출생 부산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 졸업 현재 경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으며 열린시 동인으로 활동중 시집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이 있으며 제1회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우리말의 감칠맛을 누구보다도 잘 구현해 왔던 시인은 이번 시집 [약쑥 개쑥]에서도 그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우리의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지니고 있는 리듬을 그는 그의 시에 고스란히 옮겨놓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의 시의 언어와 리듬 때문에 그가 전하는 가난한 가족과 서러운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우리의 이해를 넘어,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적셔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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