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사랑

임창연 2010. 4. 5. 06:12

하나님의 사랑

 

 

하워드 스톰은 1946년 매사추세츠의 뉴튼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노던 켄터키대학의 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불신자였던 그는 1985년 프랑스 파리에서 병에 걸려 죽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없다고 믿었던 지옥을 경험하였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거듭났습니다. 결국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였고

1992년 그리스도 연합교회의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현재 그는

오아이오의 그리스도 시온 연합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증 책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내가 던졌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있었다.
사람은 죽을 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예전과 똑같이 보이고 완전히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죽기 전에 무슨 일을 당했을지라도 그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다.

고통은 사라지며 살아 있을 때보다 오히려 육신의 상태는 더 좋아졌다고 느끼게 된다.
자신의 주위 사람과 환경에 대해 아무런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어 심한 혼란을 느낀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고 자신을 볼 수 없다. 상대방을 만지더라도 아무 반응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보다 먼저 간 사랑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날 일을 간절하게 바라며 평온한 상태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변환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며 천국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사람을 판단하는 것과 하나님이 사람을 아시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속의 뜻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모든 행위, 생각, 동기 등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료, 또 우리 자신을 사랑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이끌리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료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중간에 위치하는 일은 없다.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았는지 아닌지는 내면의 자아가 알고 있다.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우리가 살아온 삶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은 증인, 논의, 배심원,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우리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영이며 이 영이 하나님의 귀가 되고 눈이 된다.

우리가 자기기만으로 인해 눈이 멀어지더라도 진리의 영은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자도 되고 악마도 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그 차이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고 천상의 존재들이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영적 직관이 부여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자기기만이 가능케 하는 무한한 능력도 있다.

악인은 본인이 선하다고 주장하며 선인은 본인이 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심령은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다. 하나님은 속임을 당하실 수가 없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증오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다.

사랑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증오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지옥을 향해 간다.

우리의 삶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다음 세상의 우리의 운명은 우리 자신이 만든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어떤 영원의 세계로 가는지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힘쓴 사람은 하나님께로 이끌린다.

하나님을 미워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멀리 어둠 속에서 나는 밤하늘의 희미한 별빛 같은, 바늘구멍 만한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빠른 속도로 점점 밝아졌다. ..... 그것은 나를 향하여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나는 그것이 내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과 그 빛의 광휘에 내가 타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빛으로부터 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빛은 내가 본 어떤 빛보다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은 태양보다도 밝고 번개불보다도 밝았다. 곧 그 빛은 나 앞에 왔다. 나는 그것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지만 그것이 단순한 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살아있는 존재였다."


"내가 접근할수록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나는 강렬한 사랑의 느낌과 생각이 나에게 스며들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존재의 중심, 유일한 하나인 위대한 빛의 존재에 다가감에 따라 나는 사고가 정지된 것 같은 경험을 했다. 그때의 일을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신(God)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 신(God)은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 신(God)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사랑의 경험은 내 인생을 완전히 변모시켰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나는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당신이 죽은 다음) 당신을 기다리는 존재들이 당신을 이 물질 우주의 현실로부터 신의 경이와 능력을 처음 접하게 될 새로운 현실로 데려다 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여러 종류의 문이 있다. 각자는 그의 생애, 문화적 배경, 영적 수준에 따라서 천국으로 안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안내를 받고, 어떤 사람은 멋진 성에 도착하며,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의 집과 유사한 곳으로 안내를 받는다. 특별한 마음의 안정과 교화를 위하여 신과 천사들은 개인적으로 각자에게 적합한 배경(세팅)을 창조한다. 신이 우리 각자에게 얼마나 마음쓰고 존중하는지를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출처: Howard Storm, "My descent into death", Clairview)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 하워드 스톰 목사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이 혼합되어 있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분리되어 있다.

천사들과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고통의 장소로 가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말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지옥을 선택하려고 하는가?

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왜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는가?

왜 사람들은 서로 증오하는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이 대답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는 거룩한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자도 되고 악마도 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그 차이를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고 천상의 선생님들은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알 수 있는 영적 직관이 부여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자기기만이 가능케 하는 무한한 능력도 있다.

악인은 본인이 선하다고 주장하며 선인은 본인이 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심령은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다.

하나님은 속임을 당하실 수가 없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증오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다.

사랑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증오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지옥을 향해 간다.

우리의 삶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다음 세상의 우리의 운명은 우리 자신이 만든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어떤 영원의 세계로 가는지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힘쓴 사람은 하나님께로 이끌린다.

하나님을 미워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그 이후의 일은 아주 경탄스러울 수도 있고 너무 끔찍할 수도 있다.

우리의 심령은 우리가 다음 세상에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안다.

우리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안다.

운명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우리의 고백을 통하여 치유와 용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아무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있을만큼 선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 천국에 가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가장 큰 중죄인도 천국에 오는 것을 허락하신다.

반면에 하나님은 가장 친절한 사람도 지옥에 갈 수 있도록 두실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 보살핌, 배움을 위해 주신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피조물을 학대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 자원, 동물, 식불들에 대한 과계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하나님을 최고의 예술가로 여기고 지구라는 그 걸작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막무가내로 이 걸작을 이용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의 순례는 시간과 공간의 여행이 아니고 본질에 대한 여행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그대로의 아름다운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는 육신의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짧은 사건은 우리의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마치 우리가 유년시절의 희망과 두려움을 즐겁게 회상하듯이

천국에서도 우리의 자상의 삶을 즐겁게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내가 하나님을 더 일찍 영접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까?

진리에 대해 눈을 감은 채 왜 그렇게 나의 삶을 낭비해 버렸던가?'

 

 

무신론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무(無)의 존재를 신뢰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화가 나 있거나

우리가 신뢰하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이다.

당신이 '존재'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당신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보여 주시지 않으면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을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셨다.

하나님을 알고자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 주신다. 


 

 

개인으로서 우리가 받은 특별한 품성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바이다.

우리가 어떤 품성의 사람을 삶의 동료로 선택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특별함 때문이다.

우리가 천국으로 여행할 때 우리에게 있는 선함은 증폭이 되고 결점은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버리고 선한 속성은 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정화되는 동안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천상의 존재들이 우리가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돕는다.

 

 

천사들은 마치 사고(思考) 처럼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왕래한다.

천사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상할 수 없는 세력을 알아차리고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그들은 미지의 차원에서 유래하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본다.

천사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혼돈을 원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스스로 준 능력 이외에는 우리에게 아무 힘을 미칠 수 없다.

가능한 한 그들을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과 천사들의 능력은 그들보다 훨씬 우월하다.

그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어는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순교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순교자들은 그 참을 수 없는 고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그들에게 열려 있고 고문은 지고한 기쁨이 되었다.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하늘문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천사들이 나타나도록 탄원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도록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

천사들은 그 종류와 유형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나온 존재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돌본다.

천사를 보내주신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우리를 동일시 하셨기에 우리도 예수님과 동일시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의 허물 때문에 내주셨다.

그래서 그분이 완전하시듯이 우리도 완전해질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시려는 소망과 능력을 가지셨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해지기를 원할 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을 닮도록 만드실 것이다.

우리는 아주 적절한 정도의 속도로 예수님을 닮아간다.  

 

 

천국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함을 입은 수많은 존재들에 둘러 싸인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그들은 한 순간이라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는 (뉴에이지 사상) 꿈조차 꾸지 않는다.

우주는 광대한 오케스트라이며 하나님이 그 지휘자라고 내게 설명하였다.

각자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악기이다.

각자는 각각의 독특한 방법으로 창조라는 교향곡에 참여한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음악이다.

우리는 천국이 부르는 노래이다.

이 교향곡의 바깥에는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가 전혀 없다.

천국의 오케스트라 안에는 모든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가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은 창조 사역에 하나님과 동참하는 일이다.

우리가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우리이며 사랑의 끈으로 하나님과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교향곡에서 우리의 역활을 알고 있으며

모든 과정 가운데 우리의 체험과 영혼을 모두 바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머니요,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철저히 의존적이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적이다.

자신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이런 착각이 자긍심이요 이것이 모든 죄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독립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인생의 체험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 낸다.

유감스럽게도 이 자아가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떼어 놓는다.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범하는 잘못 중에 가장 큰 잘못의 하나이다.

이것은 우리의 비천한 영을 하나님께 투영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종종 집단적인 관점으로 투영되는 때가 있다.

문화라는 것은 자기 중심적 자긍심의 집합체이다.

우리는 어떤 문화집단에서 성장한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소속된 문화에 의해 우리의 모습이 형성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자긍심과 자아를 버려야 한다.

큰 집단이나 작은 집단이나 차이는 없다.

우리는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 바깥에 있는 존재로 단정짓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일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살인자, 창녀, 강도, 술주정뱅이, 마약중독자,

떠돌이 부랑자, 거짓말장이등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함을 격하시키고 파괴하는 행위 그 자체는 혐오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하신다.

부모는 범죄자가 될 아이를 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신다.

다만 그 자녀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악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시고 사랑하시며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신다.

 

 

 " 저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세상은 추함과 악으로 가득 차 있어요."

나는 이렇게 항의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을 주셨다.

" 세상에는 악과 추함도 물론 있지만 네가 구하기만 한다면 선과 사랑, 아름다움도 있다.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네가 구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을 구하면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선을 추구하면 선이 네게 되돌아 올 것이다.

  자신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외부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결정된다."

 

 "어떤 경우에는 사랑을 주지만 증오가 되돌아 올 때도 있습니다"

나는 반론을 폈다.

 

"사랑의 힘은 증오의 힘보다 더 강력하며 항상 사랑이 승리하도록 되어 있다."

 

  

- 하워드 스톰 / 죽음에서 생명으로, 사후체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