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새책 소개

물 / 김숨/ 자음과모음

임창연 2010. 4. 4. 15:12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다”

 

 

쉽게 각인되는 작가, 김숨의 2010년 신작 『물』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이 빛을 발한다!

김숨 특유의 건조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바라본 ‘물’의 이미지.

감정을 싣지 않은 건조한 묘사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물인 어머니가 수평을 지향한다면, 불인 아버지는 수직을 지향한다. 한없이 낮아지려는 물과 한없이 높아지려는 불이 만나는 아슬아슬한 교차점, 그곳에 나 소금이 백야(白夜)처럼 놓여 있다. 꺼질 듯, 꺼지지 않고……“

 

 

 

환상과 리얼리즘의 결합, 그 정점에 『물』이 있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통해 참혹한 현실의 모습을 그려왔던 작가 김숨. 그 연장선상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소설 『물』을 출간했다. 김숨 소설의 매력은 서사의 힘이나 인물의 역동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건조함, 차가움,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이 등단작 「느림에 대하여」부터 『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한다. 이런 그로테스크함과 문체로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김숨의 문체는 무뚝뚝하면서 거칠다. 『물』에서 이런 문체는 더욱 견고해졌다. 짧고 건조한 문체로, 또 시간과 공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환상과 리얼리즘의 경계를 넘다든다.

작가의 환상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소설은 『백치들』 『철』을 거쳐 『물』에서 그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우리의 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한 모금의 물!

『물』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에 따라 이름도 지어졌다. 물, 불, 금, 공기, 소금, 납 등 주위에서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물질들의 특성을 각 등장인물에 대입시킨다. 언젠가 작가는 “광물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에 관심이 많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전작 『백치들』에서의 ‘모래’가 가진 이미지, 『철』에서의 ‘철’이 가진 이미지 등은 이번 작품의 ‘물’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가 언급한 ‘광물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물이고 불이고 금이고 공기이고 소금이고 납이다. 이런 물질들로 상징되는 인물들은 그 물질들의 특성에 맞게 설정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로 상징되는 어머니이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고 불을 다스린다. 그러나 물과 불은 공기에 의해 그 특성이 좌우된다. 이렇게 각 등장인물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작가는 물, 불, 소금, 공기, 금 등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에 대해 집착하고 또 서로를 정복하려 하는, 그래서 현재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상황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점들은 전작 『철』에서, 소재는 강렬하고 직정적이나 인물 간의 유기성이 다소 약한 점이 아쉽다는 평가를 충분히 보완한다. 그러면서도 작가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와 상징은 더욱 빛을 발한다.

 

작가의 말

‘물’을 쓰는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물에 사로잡혀 살았다. 저 먼 기억 속 저수지에 고인 물을 떠올리려 애썼고,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을 포착하려 했고, 쌀알만 한 물이 말라 없어질 때까지 멍하니 들여다보기도 했으며, 물 속에 벌거벗은 몸을 담그고 오래오래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

물에 꽤 오래 사로잡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물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불과 소금과 공기와 금, 그리고 납에 대해서도.

그런데도 ‘물’ 초고를 쓰는 동안 그리고 마지막 퇴고를 하는 동안, 이상한 들뜸 속에서 내내 불안하고 행복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소설이 독자들께 새롭고 즐겁게 읽혔으면 싶다.

누군가 한 모금의 물로 마른 혀를 축이면서 내 소설 ‘물’을 기억해준다면! 그것으로도 ‘물’을 쓰는 데 들인 내 시간들이 충분히 값어치 있어진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본문 중에서

물인 어머니가 수평을 지향한다면, 불인 아버지는 수직을 지향한다. 한없이 낮아지려는 물과 한없이 높아지려는 불이 만나는 아슬아슬한 교차점, 그곳에 나 소금이 백야(白夜)처럼 놓여 있다. 꺼질 듯, 꺼지지 않고……

 

 

작가_ 김숨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 장편소설로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이 있으며, 2006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작업’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추천사_ 강정(시인)

김숨의 소설은 심상한 것들을 심상하게 오래 바라보다가 그 심상함이 수상함으로 변하는 순간들에 대한 보고서다. 아니, 보고하기보다는 포착하려 한다. 보는 행위가 놓치면서 보는 것, 촉감이 놓치는 느낌,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르쳐버린 욕망을 인간의 말로 쓰려 했으니 김숨은 얼마나, 늘 숨이 가쁠까. 김숨의 수심(愁心)은 깊고 마음의 수심(水深)도 아득하다. 고통에 대한 위로보다는 탄식을 같이하는 것. 또는 탄식을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보다 더 탄식과 가까운 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 이 긴 숨은 얼마나 협착하고 위태로운가. 그래서 비옥하고 비열하고 추루하고 풍요로운가. 함부로 숨을 참거나 마구 내쉬지 말자. 김숨의 위태로운 숨을 아프게 즐길 수 있다면 그게 짤막한 위로라 여기며 더 위태로워하자. 섣불리 위안 주려는 작당보다 더 섣부르게 자신을 절개하는 일. 문학이란 본래 자기 숨을 흩트려 인간의 숨이 무엇인지 (자기도 모르게!) 깨우치게 하는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