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새책 소개

살아있는 신 (베가북스)

임창연 2010. 3. 15. 22:10

 

 

 

“도킨스씨, 신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닙니다.”

 

 

 

신은 어째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그냥 두고 보는 걸까?

사랑의 신이 어떻게 인간을 지옥으로 내몰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는 왜 좀 더 국외자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걸까?

하나의 종교가 옳고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는 게 있을 수 있는가?

어째서 신의 이름을 걸고 그토록 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것일까?

 

오늘날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조차 번뇌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들이다. 철두철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원칙을 주장하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젊은 영혼을 사로잡아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주목받고 있는 저자 티머시 켈러는, 회의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제기하는 “의구심”을 일일이 모아보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하나하나를 속시원하게 풀어주고 타파해나간다. 이를 위해 켈러는 문학, 철학, 역사, 생생한 일상의 대화, 합리적인 논증 등을 이용해서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어째서 합리적이면서도 건전한 신념인지 설명한다. 아울러 고도의 지성과 진리를 향한 욕구에 넘치는 지식인-학자들조차도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회의론자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이미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견지할 수 있는 지적인 플랫폼을 제공한다. 회의의 이데올로기를 핵심에서부터 타파하며, 기독교의 참된 목표를 향한 길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은 베스트셀러다.

 


저/자/소/개  

티머시 켈러 [Timothy J. Keller]

  1989년 뉴욕에서 Redeemer 라는 이름의 장로교회를 창립해 이끌고 있는 목회자—저술가—강사. “맨해튼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회중”으로 불리는 그의 교회는 애초 50명의 개척교회였지만, 지금은 3만 명 이상이 교회 웹사이트에서 그의 설교를 다운로드 받아 듣고, 적어도 8천 명의 신도들이 일요일마다 직접 교회를 찾는다. “대도시에서 가장 성공한 기독교 복음 전도사” 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1972년 버크넬 대학교 졸업, 고든-콘웰 신학대학과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 수료, 1981년 신학박사 학위 취득. 대학에 다닐 때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을 경험하면서 기독교 신도가 되었다. 버지니아에서 9년간 목회자로 봉직했고, 모교인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부인과 함께 특히 도회지 선교에 힘을 쏟기도 했다.

  켈러의 청중은 주로 대도시의 전문직 종사자들로, 미국 문화 전반과 그 아이디어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젊은 층. 그는 성경의 완벽한 권위에 기대면서도, 회의하고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이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2001년 소위 “교회개척센터”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100여 교회의 창립을 도왔고, 전 세계의 목회자들이 그의 전도 방식을 배우려고 꾸준히 뉴욕을 찾고 있다. 최근 미국 기독교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작가 한 마디

“2004년 11월 자끄 데리다가 세상을 떴을 때, 어떤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고급이론이나 인종-성-계급이란 삼총사의 뒤를 이어 앞으로 학계를 이끌 지적인 에너지의 중심이 과연 무엇일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그것은 종교라고.”


출판사리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아마존닷컴 장기 베스트셀러 1위 기록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팀 켈러 -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역/자/소/개   권 기 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의 모건은행에서 일했으나, 이내 월스트리트를 떠나 30년 가까이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프랑스, 독일, 홍콩 등을 편력, 서양문화를 흡수하고 동양문화를 반추했다. 홍콩에서 영화평론과 예술영화 배급을 했으며, 최근 귀국하여 다수의 해외 TV 프로그램을 수입-공급하기도 했다.
영어 번역서로는 2004년 베스트셀러 『덩샤오핑 평전』, 2008년 학술원 우수도서 『부와 빈곤의 역사』를 위시해 부커상 수상작인 『화이트 타이거』(2009), 『우주전쟁』(2005), 『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2007) 등이 있고, 독일어 서적으로 페터 한트케의 『돈 후안』(2005)과 『신비주의자가 신발끈을 묶는 방법』(2005) 등을 번역했으며, 불어 서적으로는 앙드레 지드의 소설『코리동』을 완역하기도 했다

 

추천사: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이에게 저자는 의심의 깊이를 더함으로 오히려 믿음의 도약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기독교적 신념을 공격하는 세상과 씨름해 본 이들은 이 책을 통해 의심의 바닥을 딛고 거듭난 지성과 믿음의 영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회의하는 이들을 향한 저자의 열린 마음과 균형을 잃지 않는 설득력 있는 논증이 이 책의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다. — 오정현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살아있는 신“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신에 대한 믿음이 분명해지도록 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의심과 반문과 비판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명백한 대답을 제시한 신앙 변증의 명저로 읽힌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보길 권한다. - 정일웅 (총신대학교 총장)


신은 있는가?

'있다-없다'를 놓고 인류는 끝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그만큼 답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아직도 회의와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뜻도 된다.

그 끝없는 논쟁과 회의에 대해서 밝고 환하고 분명하게 답을 제시해 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에세이 같기도 하지만 그 너머의 역사적, 문학적, 철학적, 논리적변증을 통해서 그러한 의심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그런데도 재미있고 설득력이 있다.

인간이 신을 믿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다른 무엇'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문제와 고통의 뿌리라는 사실을 설파하는 켈러의 논리는 가차 없이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고 설득적이다. 책을 넘기며 한장 한장 읽어갈수록 신이 '있다―없다'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 회의가 한 순간에 풀리면서 신의 존재가 더욱 또렷이 느껴진다. - 고도원(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일독을 권한다.우리가 자주 전전긍긍 머뭇거렸던 주제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는 참 좋은 책. 신앙인이든, 회의론자든, 정통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누구나 꼭 읽어 볼 것을 권한다. - 정주채 (향상교회 담임목사, 바른교회 아카데미 이사장)


현대 기독교인들의 고민과 지적 갈등에 친절하게 응답하는 책. 세속의 사건들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세속화의 거센 파도로 번뇌하는 영혼들에게 참다운 신앙의 의미를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 김기석 (성공회대 교수, 과학과 종교 전공,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저자)


기독교를 회의하는 자, 기독교인이었던 자, 기독교인이지만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 무엇보다 복음의 진수를 새롭게 만나고 싶은 자를 위한 책. 나는 확신한다, C. S. 루이스도 이 책을 적극 추천할 것이란 것을. -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논리의 명쾌함은 물론, 현대 기독교의 고민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겸하고 있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엄청난 포스를 느끼게한다.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뜨거운 열정은 분명한 확신을 전제하고, 분명한 확신은 선명한 논리를 전제한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선포를 설득이라는 말로 불렀다. 대사회적 무기력증과 몰아적 힘의 과시로 드러나는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은 설득을 포기한 채 믿음을 "무조건"이라는 무책임 속에 방치해 온 직무유기의 논리적 결론이다. 고민 많은 뉴욕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저자는 이 책에서 복음의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의심에 찬 물음들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그 속에 담긴 비논리적 맹목성을 드러내고, 또 의심의 무게에 눌려 희미해진 복음의 색채를 선명하게 비추어 낸다. 무조건 믿으라는 무책임함에 상처입은 이들에게, 종교적 외양이나 유사 논리로 자신의 세속성을 위장하며 사는  이들에게, 이 책은 쓰지만 좋은 약이 될 것이다.     

- 권연경 (안양대학교 신약학 교수)


목/차

들어가는 말
제 1 부  의심의 도약
[하나] 참된 종교는 오직 하나뿐? 그럴 리가!
[둘] 하나님이 선하다면 고통을 허락할 리 없어
[셋] 기독교는 가혹한 속박
[넷] 그 엄청난 부정, 교회의 책임이로소이다
[다섯] 사랑의 신이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다니?
[여섯] 기독교는 틀렸다고 과학이 증명했다
[일곱] 성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야 없잖은가!
 한 숨 돌리고
제 2 부  우리는 왜 믿는가?
[여덟] 신이 있다는 단서들
[아홉] 신을 안다는 것
[열] 죄악이라는 문제
[열하나] 종교와 복음
[열둘] (진짜) 십자가 이야기
[열셋] 부활의 실재實在
[열넷] 춤추는 신
에필로그 : 자,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책 속으로 / 훑어보기

1) 2004년 11월 자끄 데리다가 세상을 떴을 때, 어떤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고급이론이나 인종-성-계급이란 삼총사의 뒤를 이어 앞으로 학계를 이끌 지적인 에너지의 중심이 과연 무엇일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그것은 종교라고.


2) 믿는 사람들은 의심을 인정하고 이와 맞붙어 싸워야 한다. 그저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그걸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반대의견과 힘겹게 오랫동안 싸우고 나서야 비로소 희의론자들에게 말도 안 되거나 무례하지 않고 그럴듯한 신앙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튼튼한 신앙을 갖게 된 후에라도, 의심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신앙의 근거를 찾아 노력해야 함과 동시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도 자신의 합리적 추론 안에 숨어있는 어떤 형태의 신념을 찾는 방법을 배워야 할 일이다. 모든 의심이란 ―아무리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보일지라도― 사실 어떤 신념을 보충하거나 교체하는 또 다른 신념이다. ‘신념 A'를 의심하려면 ’신념 B'를 믿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지, 그 외엔 방법이 없다.

 

3) 세상의 악과 고통을 멈추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화를 낼 만큼 위대하고 초월적인 신이 있다면, 당신이야 모르겠지만 그런 악과 고통이 계속되도록 허락하기에 합당한 이유를 가질 만큼 위대하고 초월적인 신도 (동시에) 있는 법.


4) 믿음과 마찬가지로 의심도 배워야 하는 것. 이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회의론에는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걸 추종하는 자들은 남들을 개종시키려 드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회의론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종종 묻고 싶었다. “회의론자인 당신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그들의 회의는 이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답은 갖고 있지 않다.


5)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 인간이 그저 진화를 했다면, 끔찍스러운 사악함 같은 것이 정말로 있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6) 사랑하는 사람이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나 관계로 인해서 피폐해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 이럴 때 우린 전혀 상관도 없는 남에게 하듯이 부드러운 인내심을 갖고 반응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분노는 결코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다. 증오란, 증오의 궁극적인 형태란, 무관심이다‥‥ 신의 분노는 고약한 성질의 폭발이 아니라, 암에 대한 그의 차분한 저항이다. 신이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인류의 내부를 좀먹는 바로 그 암 말이다.


7) 과학의 실행은 신이 죽은 자들로부터 누군가를 살려낸다는 따위의 생각을 거부하라고 요구한다니‥‥? 하지만 이런 주장은 마치 술에 취해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가로등 아래가 훨씬 밝으니까 가로등 아래서만 열쇠를 찾아봐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사실 그의 주장은, 이런 술 취한 사람보다 한술 더 떠서, 어둠 속에서 열쇠를 찾기는 어려울 터이니, 열쇠는 ‘틀림없이’불빛 아래에 있다고 우기는 셈이다.


8) 만일 진화가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세계관의 위치로 올라선다면, 성서적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가 과학적, 생물학적 가설의 수준에 머문다면, 창조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이 지닌 함의와, 하느님이 생물학의 단계에서 어떤 창조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과학의 탐구 사이에는 갈등이 빚어질 이유가 없다.


9) 내가 태양이 떴다고 믿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태양을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태양으로 인해 만물을 보기 때문이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꼭 같은 이치다.


10) 위대한 예술이란 하나의 단순한 메시지로써 “우리 머리를 내리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이 “시끄럽고 요란하기만 한 멍청이가 아무 뜻도 없이 지껄이는 이야기가 아님”을 언제나 깨닫게 해준다.


11) 나는 신이 존재할 것 같다는 걸로 논쟁을 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신이 존재한다는 걸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지성적으로 어떠한 것을 단언하든 상관없이, 신을 믿는다는 것은 증명할 길은 없지만 모를 수는 없는 불가피하며 “기본적”인 믿음이다. 나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확신시켜주고 싶다.

 


신은 없다고 믿는 청년들, 팀 켈러의 설교에 귀 기울이다.

  “신은 있다 - 아니, 신은 없다!” 너무도 해묵은 논쟁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치열한 논쟁이다. 고집스러운 원칙론으로 “성경에의 복귀”를 주장하면서도, 젊은 화이트칼라와 예술가들의 영혼을 빠르게 사로잡은 팀 켈러는, ‘신은 애당초 없었음’을 주장하는 회의론자들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무신론자들에 대한 켈러의 반론은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과 논리와 인류학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회의론자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노력이 배어있어서 한층 더 설득력을 지닌다.

  21세기에 기독교인들이 서있는 자리는,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즈넉한 전원 마을의 풍경이 아니다. 그 자리는 대체로 붉은 십자가 네온사인 불빛과 노래방과 술집의 불빛이 서로 뒤섞이고, 장사꾼과 전도자의 외침이 한데 엉키는 시끄러운 도시의 한복판이다. 이 시대는 돈의 위력이 수도원의 가난한 영성을 조롱하며, 전지전능한 과학기술의 위력이 종교의 낡은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시대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신” 바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민과 지적 갈등에 친절하게 응답한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로부터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는 신앙이 아니라, 21세기의 한복판에서 세속화의 거센 파도를 직면하면서 번뇌하는 영혼들에게 참다운 신앙의 의미를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