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새책 소개

성탄 피크닉 (민음사)

임창연 2009. 12. 29. 13:33

 

 

 

 

『걸프렌즈』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소설가 이홍의 또 하나의 문제작


강남 소설의 문법으로 강남 소설을 내파한

21세기 카프(카) 소설의 탄생!



  장편소설 『걸프렌즈』로 2007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 이홍의 두 번째 장편소설 『성탄 피크닉』이 출간되었다. “문학성․다양성․참신성이라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원칙하에,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경장편을 엄선해 소개”하는 ‘민음 경장편’ 시리즈의 그 두 번째 권이다.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새롭게 선보인 ‘민음 경장편’은 야심 차게 출발한 김이설의 『나쁜 피』가 2009년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이홍의 『성탄 피크닉』이 계간지 발표 직후 2009년 한국일보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작가와 작품 선정에 대한 안목을 한껏 과시한 바 있다.

  영화 「걸프렌즈」의 원작자란 사실이 뒷받침해 주듯 이홍은 대중의 기호를 읽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소설가 중 하나다. 가려운 데를 속 시원하게 긁어 줄 뿐만 아니라 밀고 당기기에도 능하다. 능청스레 밀어냈다가 어느 순간 놀라운 흡인력으로 사정없이 몰아친다는 이야기다. 『성탄 피크닉』에서 이홍은 자신의 이러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토막 살인과 사체 유기, 로또 당첨, 원조 교제 등의 흥미로운 소재를 때로는 스릴러적 코드로, 때로는 사회파 추리소설다운 면모를 흠씬 보여 주며 빼어난 작품으로 완성해 냈다. 이 소설에 대해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강남의 신풍속을 위악적으로 다루면서도 사회윤리적 상상력을 결합해 풍속성의 단면을 넘어섰다.”고 평했으며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이 영역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수작”이라고 평했다. 시종 긴장감을 유지하며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 『성탄 피크닉』은 또 하나의 문제적 작품으로 등극하며 이 계절,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소설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로또에 당첨된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압구정 진출기  


  2000년대 들어 급부상한 강남 소설은 강남 내부자의 위치에서 자본주의사회가 지닌 물질만능주의나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성을 성찰하는 소설의 하위 장르다. 하지만 이홍의 『성탄 피크닉』은 강남 내부에 살면서도 ‘내추럴 본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에 강남 안의 강북인, 외부인, 타자, 소수자, 이방인, 방문객으로 존재하면서 소외당하는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강남 소설을 내파(in-plosion)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겉으로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모든 것이 성취 가능하다는 무한 자유와 자발적 성취를 보장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소비와 갈망을 통해 한없이 그 성공을 유예한다.

  강남은 더 이상 강남이 아니다. 특정 지역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정부(政府)이기 때문이다. 『성탄 피크닉』은 ‘강북의 강북’에 해당하는 ‘성남’에 살았던 한 가족이 로또에 당첨되어 ‘강남의 강남’에 해당하는 ‘압구정동’의 한양아파트에 입성한 이야기다. 그런데 주인공 가족에게 발부된 것은 ‘영주권’이 아닌 ‘거주권’. 게다가 강남인들은 비강남인들의 진입을 처음부터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입을 허락하는 척하면서 그들을 다시 퇴출시킨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내추럴 본 부르주아’들의 강남에 오롯이 편입되기 위해서는 ‘내추럴 본 프롤레타리아’인 은영, 은비, 은재 주인공 세 남매의 처절한 몸부림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된 뒤 엄마와 이혼하고 당첨금의 20분의 1을 챙겨 집을 나간 아빠와, 1년 과정으로 홍콩의 딤섬 스쿨에서 유학 중인 엄마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첫째 은영의 최대 고민은 취업. 명문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벌써 스무 번도 넘게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백수인 둘째 은비. 소설 속의 핵심 서사를 이끌고 있으며 강남적 외모와 가치관에 가장 부합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돈을 물 쓰듯이 쓰며 명품을 휘감는 게 로망인 은비는 열아홉이라고 나이를 속여 강남 아저씨들이나 오빠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야 만다. 게임 중독인 왕따 고등학생 막내 은재. 갈수록 말수가 줄어들며 학교에서 도망치고만 싶은 은재는 구타를 일삼는 폭력 남편으로 인해 고통받는 옆집 여자와 불륜 관계에 빠진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무렵, 이들 세 남매에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계속 돈을 뜯어내려는 은비의 협박에 화가 난 최 원장이 은비의 집으로 찾아오고, 공모 아닌 공모로 인해 최 원장이 살해되기에 이른다. 이제 꿈과 행복을 보장하는 유토피아였던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는 피가 낭자한 살인의 현장이자 디스토피아가 되고 만다. ‘강남으로의 안착’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었던 그들의 선택은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삼분(三分)된 최 원장의 시체를 각기 자신들의 가방 속에 넣고 집을 나서는 것. 바야흐로 세 남매의 우왕좌왕, 좌충우돌 ‘성탄 피크닉’이 시작된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성탄 피크닉』은 혼종적 소설이다. 21세기적 모더니즘의 고현학을 보여 주면서, 신프롤레타리아 계급 중심의 포스트리얼리즘적 면모 또한 제시하기 때문이다. 강남 소설적 성찰이나 반성을 ‘내부의 배제’를 통해 문제 삼는 비강남적 소설이기도 하다. 계급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강남 진입의 불가능성으로 보여 준 풍자소설인 동시에, 포기할 수 없는 강남에 대한 무한 욕망을 겸허하게 인정한 심리소설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이 소설의 인물이나 배경, 시점은 예기치 않은 병치로 상호 전염을 일으킨다.

  20세기 모던 보이의 ‘경성’은 이제 21세기 모던 걸의 ‘압구정동’으로 전유되었다. 이상의 「날개」에서 돈에 대한 매혹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았던 주인공의 비상과 추락은, 그래서 여전히 압구정동에서 진행 중이다. 

―김미현(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 본문 중에서


  헐떡거리며 소리치는 사이 남자들이 바짝 쫓아왔다. 그들은 택시 트렁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멈추라고 윽박질렀다. 택시는 외벽에 금이 가고 칠이 벗어진 백회색의 아파트 단지를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재빨리 뒤쪽 창을 확인해 보았다. 덩치 큰 남자들이 주차장에 세워 둔 구형 에쿠스에 올라탔다.

  이제 막 속도를 올리던 택시가 아파트 단지 내 도로 끝에서 멈추었다. 공항 터미널 방향으로 가려면 좌회전 신호를 기다려야 했다. 차창 앞 신호등은 빨간색이다. 곧이어 에쿠스가 뒤따라왔다. 택시 바로 뒤에서 멈춘 에쿠스의 보조석 문이 왈칵 열렸다. 두 명 중 덩치가 좀 더 커다란, 사진을 들고 있던 남자가 차 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심장이 훅 조이는가 싶더니 쿵쿵 날뛰었다. 그때까지 신호는 바뀌지 않았다.

저들은 누구인가.

―11~12쪽


  “야, 빨대, 너 우리 아빠 좀 어떻게 해 봐.”

  “너희 아빠?”

  “그 새끼가 자꾸 용돈을 끊어 버리겠다고 난리야. 재수 안 하면 국물도 없대. 내 개인 통장에 있는 돈은 진즉에 다 빼 버렸어.”

  “…….”

  “네가 꽂아서 안 넘어가는 남자 봤어?”

  (……)

  지희가 뭔가 잊은 게 있는 듯 구찌 백 속을 뒤적거렸다. 대니가, 대리 운전기사가 도착했다고, 이제 그만 가자고 지희를 끌어당겼다. 지희가 앙칼지게 “저리 가!” 소리치곤, 긴 팔로 은비의 목덜미를 감쌌다. 목덜미를 감싸지 않은 주먹 쥔 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렸다. 앙증맞은 주먹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 위에 분홍색 라이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BACCHUS’라는 상호가 박힌 라이터였다.

  “아빠가 다니는 단골 룸살롱이야.”

  지희가 손에 라이터를 쥐어 주며 윙크했다.

―19~21쪽 


  은영은 처음엔 카프가 뭔지도 몰랐다. X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1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도서관에 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날이었다. 텅 빈 책상 두 개를 보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그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던 학생이 “거긴 카프 자리잖아.”라고 우려하는 투로 속삭였다. 앉아선 안 된다는 듯이.

  “근데 카프가 뭐야?”

  “카프카의 줄임말.”

  왜 그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카프카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사람들도 없었다. 카프카가 뭐냐고 물으면 모두 대답하길 꺼렸다. 그러나 모두들 그 비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도하진 않았다.

  언젠가 민우가 그 자리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과외를 하는 여학생의 오빠여서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기도 할 때였다. 은영은 민우를 통해 비로소 카프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카프는 은영이 다니는 X대학 내의 모임이었다.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꽤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먼저 가입한 선배들이 직접 후배들을 지목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주로 친목을 도모하며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쳤다. 그들은 대부분 강남 출신이거나 간혹 성북동, 평창동 학생들이었다.

―69~70쪽 


  그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곤 두툼한 손아귀를 벌려서 은비의 목을 졸랐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메스를 들고 많은 사람들의 피를 묻힌 손이었다. 언젠가 은비의 늑골부터 젖꼭지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손이기도 했다. 지금은 놀라운 광기로 거칠게 목을 졸라 오고 있는 손이었다. (……)

  은비는 잃을 게 많은, 부유한 남자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냈다. 그들은 열아홉 살이라는 은비의 거짓말에 속아서 쉽게 매료되었다가, 같은 이유로 순순히 당하곤 했다. 속절없이 돈을 갈취당했다. (……)

  뭐든, 손에 잡아야 했다. 손을 뻗어서 팔을 움직였다. 널찍한 콘솔 다리가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스르륵 힘이 풀리는 순간 필사적으로 콘솔 다리를 콱 잡았다. 콘솔이 흔들렸다. 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던 참이었다. 무릎으로 그의 가랑이 사이를 퍽 찍어 올렸다. 콘솔 위에서 어떤 물체가 툭 떨어졌다. 검푸른 청동 말 조각상이었다. 청동 말 조각상은 그의 정수리를 찧고 어깨 옆으로 떨어졌다. 그의 정수리에서 붉은 핏방울이 불꽃을 터뜨렸다. 동시에 그가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그는 제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묻어난 핏자국을 보곤 살에 파묻힌 작은 눈을 확 벌렸다.

  “이, 이게, 뭐야! 피, 피, 피…….”

―74~75쪽 


  밥공기를 감싼 랩은 잘 벗겨지지 않았다. 토막 난 사내의 몸뚱어리는 밥공기처럼 랩에 감겨 밀폐되어 있었다.

  두 사람 외에 다른 누군가가 방 안에 있는 것 같았다. (……)

  침대가 심드렁하게 들썩거렸다. 3분쯤 지났을 때 벽에 세워 둔 빨간 골프 가방이 앞으로 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골프 가방이 넘어진 것을 보고 놀란 은영이 짧게 악,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민우가 사정을 했다. 민우가 콘돔을 죽 잡아당겨서 침대 옆 쓰레기통에 휙 던졌다. 은영의 몸에선 한 방울의 땀도 배어 나오지 않았다.

  민우는 마른 휴지로 제 성기를 대충 닦아 내고는 곧바로 팬티를 입었다.

  “거기 오는 선배 중에 한정우 선배라고 있어. 그 형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랑 호형호제하는 사이여서 어렸을 때부터 벌거벗고 물놀이했던 친한 형이야. 그 형이 몇 년 전에 명품 몇 가지 수입하는 회사를 인수했어. 마케팅 쪽 사람을 몇 명 구한다고 하더라고. 그쪽은 특채만 뽑으니까. 아마도 이번에 졸업하는 후배들 중에서 두어 명은 스카우트하지 않을까 싶어. 그 형 오면 널 소개해 줄게.”

  얼룩진 천장을 뚫어지게 보았다. 옷은 이미 입고 있었다. 화장품 파우치를 챙겨 오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189~191쪽



■ 줄거리


  소설의 무대는 크리스마스 무렵의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주인공은 로또에 당첨돼 4년 전 성남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은영, 은비, 은재 세 남매다. 루이뷔통, 구찌, 낸시 곤잘레스를 쇼핑하고 소비하기 위해 은비에게는 돈 많은 강남 아저씨들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런데 은비의 휴대폰에 저장된 열두 명의 ‘킹카 오빠’ 중 하나인 최 원장이 느닷없이 세 남매의 집에 들이닥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그저 강남에 제대로 한번 편입되어 보고자 했던 소박한 꿈은 우발적 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만 한다.

  세 남매는 12월 25일 00시에 만날 장소를 은밀히 교환한 후 각자 가방 하나씩을 들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은영은 송년 모임에서 카프 멤버들과 친교를 맺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은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폭들에게 정신없이 쫓기다가 강진 바닷가까지 떠밀려 간다. 세 남매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그야말로 만만치가 않은데…….



■ 이 책의 차례


성탄 피크닉  


작가의 말  

작품 해설

웰컴 투 강남_ 김미현(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 저자 소개


이홍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7년 장편소설 『걸프렌즈』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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