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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던 날, 복수의 요리가 시작됐다…‘혀’ / 조경란 소설

임창연 2007. 11. 28. 22:16


[문학예술]사랑이 끝나던 날, 복수의 요리가 시작됐다…‘혀’


◇혀/조경란 지음/352쪽·1만1000원·문학동네

그러고 보니 조경란(38) 씨가 등단한 지 12년째다. 그는 삶의 모습들을 섬세한 문체로 짜 온 작가다. 그런 그가 새롭게 선보인 장편 ‘혀’는 전작들과 선을 긋는다. 문체도, 전개도 대중적이다.

‘요리소설’이다. 사실 요리는 많은 작가와 영화감독을 매료시켰던 소재다. 음식에 지나치게 탐닉하기도 했다는 조 씨도 혀가 기억하는 맛을 활자화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레스토랑 주방과 요리사들을 꼼꼼하게 취재하면서 쓴 ‘혀’는 그 꿈의 결실이다.

서른세 살 지원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요리사다. 요리클래스를 운영하던 그가 자기 일터의 문을 닫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바로 사랑이 끝났을 때였다.

7년을 사귄 연인 석주가 다른 여자(그것도 자신의 요리강의를 듣던)에게로 떠나고, 지원은 남겨진 개 폴리와 더불어 사랑의 상처를 견뎌야 한다. 작가는 지원이 전 직장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노베’로 돌아와 일하면서 아픈 기억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다양한 음식에 대한 화려한 묘사와 엮어 보여 준다. ‘설탕을 넣은 달걀오믈렛, 오이피클, 양파와 토마토, 카망베르치즈, 겨자씨가 통째로 들어 있는 머스터드소스를 바른 바게트 샌드위치.’

그리고 ‘운명의 오리요리’에 대한 묘사. ‘오리몸뚱이를 움켜쥔다. 가금류 중에서 칠면조 다음으로 크고 섬세한 맛을 가진 재료다. 밤으로 속을 채우고 표면엔 올리브오일과 허브를 발라 오븐에 구워 내갈 거다.’ 옛 애인이 새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를 맡게 된 지원은,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며 석주가 좋아했던 오리 요리를 만드는 것으로 잔혹한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다.


단순한 이야기의 속을 채우는 것은 음식에 대한 많은 정보와 ‘감각’에 대한 작가의 사유다. ‘내 혀의 돌기들, 수천 개의 미각유두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미각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많은 쾌락을 주는 감각이다. 먹는 즐거움은 시각이나 후각 같은 다른 감각들, 쾌락들과 섞일 수 있으며 다른 쾌락들의 부재를 달래 줄 수도 있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이 모든 것은 감각의 문제다.’

평론가 김화영 씨가 “소설 ‘혀’는 조경란 식 ‘감각의 제국’”이라고 평한 대로 작가는 몸이 느끼는 감각을 통해 어떻게 타자와, 세계와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사랑의 추억을 가진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했을 때의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다소 성긴 듯한 문장들이 독서에 속도감을 준다. 호러 무비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편, 이 소설이 대단히 슬픈 이별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