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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銀과 톨스토이

임창연 2007. 10. 10. 22:41

[한마당―문일] 高銀과 톨스토이

 

2007년 10월 09일 (화) 19:09   국민일보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의 대세는 톨스토이였다. 한 수 위인 도스토예프스키가 20년 전 죽었기 때문에 필적할 인물은 없었다. 톨스토이도 상금을 러시아정교회에게 탄압받던 도호보르교 신도들의 캐나다 이주 비용으로 써달라고 스웨덴 한림원에 편지를 보냈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상은 엉뚱하게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에게 돌아갔다. 온 유럽이 들끓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성명을 내어 "톨스토이의 무정부주의적 사상이 노벨상의 이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의 이념은 인류의 이상과 진보에 기여하는 업적을 평가하자는 것이어서 문학상도 초기에는 주로 이상주의적, 인도주의적 문학가에게 수여됐다. 평화주의자, 박애주의자인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징병제를 거부하는 몰몬교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징병제 거부는 근대국가의 기반을 위협하는 일로서 스웨덴 한림원은 톨스토이의 그같은 무정부주의적 사상이 인류 발전 방향에 적합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상자 선정이 회를 거듭하면서 작품 내용에 관계 없이 우수한 성과를 거둔 작가에게 주어지는 예가 늘어났어도 인류의 이상과 진보라는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가 내일로 다가왔다. 경기도 안성의 고은 시인 집 앞에는 3년째 기자들이 진을 칠 모양이다. 고 시인이 주목받는 것은 그가 제1차 남북 정상회담과 그 후 에 보여준 민족 통일을 위한 발군(拔群)의 활약 때문일 것이다.

2000년 6월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이자 냉전지대의 정상들이 포도주잔을 들고 건배하는 사이에 얼굴을 내민 시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만찬 축시에서 "이 만남이야말로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 얼굴이 아니냐"고 읊었다. 2005년 7월 북한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서 그는 사실상 주석(主席)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광채가 작년 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한 방으로 사라졌다. 그 때 시인은 무얼 했는가. 현실 참여와는 거리가 먼 정현종 시인까지 '무엇을 바라는가'라며 핵실험을 시로 절규했지만 고은의 시는, 문학은 침묵했다. 북한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고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회는 유보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GoodNews pa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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