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플라워 / 김선우 / 예담

촛불, 광장, 여자들… 꽃이 되다
촛불 집회를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서사
2010년을 여는 화제의 소설, 시인 김선우의 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주요무대는 2008년 촛불의 밤들이다. 그해 봄, 신비로운 한 소녀가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이름은 지오. 나이는 열다섯 살. 캐나다 깊은 오지마을에 사는 지오는 ‘자연의 감각’을 가진 아이.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십여 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특이한 다문화 소녀. 지오는 한국이 궁금하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인터넷을 통해 지오를 알게 된 소심한 직장인 희영, 당돌한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 싸가지 있는 강남녀 수아, 그리고 떠돌이 개 사과. 이들이 지오를 맞아 서울 대탐험을 시작한다. 2008년 5월의 어느 저녁, 촛불 집회에 나온 이들은, 소를 데리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나면서 사건 속으로 휘말리는데…….
촛불 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촛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드라마틱하고 예술적이며 문화적이자 강력한 생명의 메시지를 통해 사랑스러운 젊은이들, 소년들, 소녀들… 미래 세대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성장해 간다.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서사를 통해 21세기적 생명의 감각에 대해 이 소설은 묻고자 한다.
캔들 플라워, 촛불이 모여 꽃으로 피어나다!
“2008년의 촛불 속엔 ‘새로운 생명의 감각’이라고 할, ‘생명에 대한 예의’를 고민하게 하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질문과 호혜적 연대의 열망이 있었습니다.”-김선우
이 소설은 우리가 미처 눈 돌리지 못한 가치들에 주목하고 있다. 촛불 집회의 주요 화두였던 ‘광우병 쇠고기’ 논란 속에서 병든 소를 먹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 때문에 병들어가는 동물들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떠돌이 개 ‘사과’가 주인공들을 엮어주는 단단한 끈이 되는 것도 결국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또한 왜 우리의 십 대들이 촛불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는지, 그들이 꿈을 잃고 ‘시험지옥’과 ‘미친 교육’의 희생양이 된 채 얼마나 억압되어 살아가는지에 대해 캐나다 소녀 지오의 모습과 대비시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따뜻한 우정으로 손을 맞잡았던 그 순간, 우리 모두가 ‘캔들 플라워’가 되었던 그 순간을 소설에 담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관능적 미학의 시인, 김선우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자연과 여성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시인 김선우는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에서도 소설가적 재능을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다소 딱딱해 보일 수도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곳곳에 묻어난 김선우 시인의 독특한 표현과 시적 감수성은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그 속에서 소녀들의 성장과 여자들의 일상이 섬세한 미학으로 그려지고 있다.
[캔들 플라워]는 Yes24 문화 웹진 '나비'에서 최고 조회 수를 기록하며 넉 달간 독자들의 열띤 참여와 호응 속에서 연재되었고, 두 달 간의 퇴고 작업을 거쳐 책으로 출간되었다.
촛불 집회를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서사
2010년을 여는 화제의 소설, 시인 김선우의 두 번째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주요무대는 2008년 촛불의 밤들이다. 그해 봄, 신비로운 한 소녀가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이름은 지오. 나이는 열다섯 살. 캐나다 깊은 오지마을에 사는 지오는 ‘자연의 감각’을 가진 아이.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십여 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특이한 다문화 소녀. 지오는 한국이 궁금하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인터넷을 통해 지오를 알게 된 소심한 직장인 희영, 당돌한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 싸가지 있는 강남녀 수아, 그리고 떠돌이 개 사과. 이들이 지오를 맞아 서울 대탐험을 시작한다. 2008년 5월의 어느 저녁, 촛불 집회에 나온 이들은, 소를 데리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나면서 사건 속으로 휘말리는데…….
촛불 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촛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드라마틱하고 예술적이며 문화적이자 강력한 생명의 메시지를 통해 사랑스러운 젊은이들, 소년들, 소녀들… 미래 세대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성장해 간다. 위로와 환대, 따뜻한 우정의 서사를 통해 21세기적 생명의 감각에 대해 이 소설은 묻고자 한다.
캔들 플라워, 촛불이 모여 꽃으로 피어나다!
“2008년의 촛불 속엔 ‘새로운 생명의 감각’이라고 할, ‘생명에 대한 예의’를 고민하게 하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질문과 호혜적 연대의 열망이 있었습니다.”-김선우
이 소설은 우리가 미처 눈 돌리지 못한 가치들에 주목하고 있다. 촛불 집회의 주요 화두였던 ‘광우병 쇠고기’ 논란 속에서 병든 소를 먹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 때문에 병들어가는 동물들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떠돌이 개 ‘사과’가 주인공들을 엮어주는 단단한 끈이 되는 것도 결국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또한 왜 우리의 십 대들이 촛불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는지, 그들이 꿈을 잃고 ‘시험지옥’과 ‘미친 교육’의 희생양이 된 채 얼마나 억압되어 살아가는지에 대해 캐나다 소녀 지오의 모습과 대비시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따뜻한 우정으로 손을 맞잡았던 그 순간, 우리 모두가 ‘캔들 플라워’가 되었던 그 순간을 소설에 담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관능적 미학의 시인, 김선우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자연과 여성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시인 김선우는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에서도 소설가적 재능을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다소 딱딱해 보일 수도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곳곳에 묻어난 김선우 시인의 독특한 표현과 시적 감수성은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그 속에서 소녀들의 성장과 여자들의 일상이 섬세한 미학으로 그려지고 있다.
[캔들 플라워]는 Yes24 문화 웹진 '나비'에서 최고 조회 수를 기록하며 넉 달간 독자들의 열띤 참여와 호응 속에서 연재되었고, 두 달 간의 퇴고 작업을 거쳐 책으로 출간되었다.
1장 바람 농장의 아이
2장 내 이름은 지오
3장 코코돌코나기펭
4장 지오, 열두 살의 자서전
5장 여자사람이 되는 길
6장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7장 반달, 숲의 노래
8장 아현동 언덕 위, 호박 넝쿨 집
9장 안녕, 종이학
10장 자정의 광장으로
11장 꽃, 총, 찬 비 한 줌
12장 비 그치고 레인보우
13장 그 여름 사랑이 와서
14장 마지막 밤처럼 첫 밤이
15장 이매진, 촛불 자연
16장 스트로베리 필즈여, 영원히
17장 푸른 새벽
18장 사랑해, 우리들
해설, 촛불, 소설로 태어나다
작가의 말, 광장 카페로의 초대
2장 내 이름은 지오
3장 코코돌코나기펭
4장 지오, 열두 살의 자서전
5장 여자사람이 되는 길
6장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7장 반달, 숲의 노래
8장 아현동 언덕 위, 호박 넝쿨 집
9장 안녕, 종이학
10장 자정의 광장으로
11장 꽃, 총, 찬 비 한 줌
12장 비 그치고 레인보우
13장 그 여름 사랑이 와서
14장 마지막 밤처럼 첫 밤이
15장 이매진, 촛불 자연
16장 스트로베리 필즈여, 영원히
17장 푸른 새벽
18장 사랑해, 우리들
해설, 촛불, 소설로 태어나다
작가의 말, 광장 카페로의 초대
출입구에서 따뜻한 바람이 뭉클 밀려들었다. 입국장을 걸어 나온 소녀가 살그머니 입을 벌렸다. 입을 벌린 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의 공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 눈을 살짝 감은 채 숨쉬기에 몰두하는 소녀의 얼굴이 조용히 빛났다. 막 도착한 이곳의 공기를 신중하게 맛보고 있는 요리사처럼. 가만히 숨쉬기에 몰두하던 소녀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소녀가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공기 중으로 후, 자신의 숨을 불었다. 소녀의 숨결이 번져간 쪽 공기 속에서 무언가 발견한 듯, 소녀가 공중으로 팔을 내밀어 나비를 잡듯 무언가 잡았다. 가볍게 겹친 소녀의 손바닥이 열리자 은빛 솜털을 단 민들레 홀씨 하나가 촉촉하게 땀이 밴 손바닥에 붙어 있었다. 소녀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눈앞으로 올려 은빛 씨앗을 바라보았다.
“아모르 파티!” 소녀가 가만히 민들레 홀씨에게 속삭였다. 손바닥 위의 민들레 홀씨를 들여다보던 소녀가 이윽고 손바닥 위로 훅! 숨을 불었다. 은빛 홀씨가 가볍게 떠올랐다.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홀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나가던 몇 사람이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의 출현에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일렁였다. 딱히 소녀의 차림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튄다, 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녀의 일거수일투족엔 튀면서도 오랫동안 몸에 밴 숨결처럼 자연스러운 게 있었다. 은빛 솜털날개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을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
꿈은 어디 있냐고? 글쎄. 월급 나오는 직장에 붙기만 한다면! 마음 졸이며 ‘후루룩’ 삼키던 라면 국물에 말아 먹은 딱딱한 찬밥 덩이가 혹시? 그건 이미 소화되어 피둥피둥한 살과 누리끼리한 피부로 형질 변화했지. 그렇게 사 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서른을 코앞에 둔 막막한 스물아홉이 된 것이다.
성취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열심히 습관적으로 한다(행복한가 어떤가 따위는 묻지 말 것). 월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저축하며 결혼자금을 만든다. 결혼한다. 아이를 낳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향해 장기 도전. 내 집 마련. 아이들은 크고. 다 큰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나는 ‘노약자’가 되어. 죽는다.
호오, 이런 명쾌한 덧뺄셈이라니. 물론 그 사이에 복병 같은 괄호들이 때때로 놓이겠지만, 이 명백한 산술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생이여. 희영은 덜컥 겁이 났다. 부랴부랴 여권 사진을 찍고 여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항을 그리워하는 병이 시작되었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가는 것이 좋듯이 여권을 들고 공항에 와 비행기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좋았다. 정작 자신은 떠나지 못하면서. 매일 코코돌코나기펭! 주문을 외우면서.
그런데 차츰 궁금증이 생겼다. 초경을 한 내 버자이너가 보고 싶어진 거다. 그런데 아무리 고개를 수그려봐도 볼 수가 없었다. 정확히 내 몸의 어디에서 피가 나와 붉은 꽃무늬를 찍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만든 흰색 모슬린 원피스를 입고, 조안이 백리향과 크로커스 꽃으로 만들어 얹어준 화관을 쓰고, 작은 여신처럼 뒤뜰 장미정원을 우아하게 걷다가 나는 말했다.
“내 버자이너가 보고 싶어.”
엄마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내 손에 할머니가 아끼는 18세기 베네치아산 유리공예 거울을 들려주었다. 하늘이 파랬다. 바람이 향기로웠다. 흰 구름이 떠갔다. 나는 우리 식구들이 가끔 둘씩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 그네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모슬린 원피스를 들쳐 올렸다. 거울이 반짝였고, 햇빛이 부서지며 내 꽃을 밝혔다. 사실, 그건 그다지 예쁜 꽃이... 아니었다. 분홍빛 도톰한 살로 덮인 좀 뭉툭한 꽃. 따뜻한 햇빛을 받은 내 자그마한 버자이너. 살짝 벌려보았지만 그곳의 어디가 내 몸속과 연결된 구멍인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몸속으로 연결된 구멍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손거울의 위치를 바꾸고 고개를 수그려보다가 지쳤다. 몸의 중심이 따뜻해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가든 식탁에는 두꺼운 빵조각을 뜯는 식구들이 햇빛 속에서 빛났고, 나는 살짝 낮잠이 들었다. 유리 손거울을 든 채.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 안 예뻤어.” 내가 식구들 쪽으로 다가가며 나지막이 말하자 엄마와 할머니와 조안이 와그르르 웃었다.
“무슨 소리!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막 피었는걸.”
할머니가 무화과 얘길 했다. “무화과는 속으로 꽃이 핀단다. 그리고 그대로 열매가 되지. 얼마나 달콤하고 향기로운데.”
촛불의 행진 속에 들어와 있으면 말야. 해안에 나가 놀던 날들이 생각나. 밤 바다 속에 들어가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가 숨 쉬는 게 분명히 느껴지잖아? 비슷한 느낌이 들어. 우리 모두 레인보우 비치에서 발가벗고 놀던 날들 기억하지? 숨 쉬는 바다가 숨결처럼 파도를 일으키는 거. 생물체 같은 파도의 움직임. 물결의 감촉… 가다가 막히면 행진 방향을 두고 의견이 나뉘고, 파도가 깨지듯이 흩어져 물보라를 날리기도 하지.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스레 시위 행렬에 합류했다가 자연스레 빠져나가기도 하다가… 행진하는 사람 자신도 내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데 바다가 숨을 쉬듯 전체는 흘러가. 줄을 맞추지도 똑같은 구호를 외치지도 않지만…….
오늘 행진하다가 정말 즐거웠던 순간은 말야. 여러 갈래 물길로 흩어져서 대열이 움직이는데 나랑 내 친구들이 함께 걷던 대열 앞에 전경부대가 떡 나타났을 때야. 이차선 길을 완전히 막아선 전경 부대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눈빛을 주고받은 선두의 사람들이 휙 몸을 돌렸어. 그러자 매스게임을 하듯 차례로 몸을 돌려 대열 맨 후미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두가 되었지. 길을 막고 섰던 경찰들은 허탈했을까 안도했을까. 외침소리와 웃음. 호루라기소리 속에서 물결은 다시 되돌아가며 새 길이 트일 때까지 또 왁자하며 흘러가는 거였어.
전혀 새로운 방향의 물길이, 막힌 길 끝에서 한순간에 탄생한 거야.
“우리 원래 밤길 잘 다녀요. 우리 야자 열두 시에 마치걸랑요?”
한 큐에 경찰의 ‘선도 방송’을 엿 먹인 그 말이 연우의 마음을 가파르게 후벼팠다. 연우는 아이들의 반짝거림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학교는 전쟁터고 학원마다 문전성시다. 자정 무렵이면 연우의 집 근처 대로변에도 어김없이 학원 봉고 차들이 멈춰서곤 했다. 그 닭장차에서 아이들이 졸린 눈을 한 채 강시처럼 쿵쿵 뛰어내렸다. 밤 12시에!
연우가 시시때때 펼치곤 하는 ‘십 대 사랑론’과 ‘십 대 무장봉기론’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얘들아. 산다는 건 꿈꾼다는 거잖아. 꿈이 없으면 좀비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삶이 대체 언제 행복해진단 말야? 학교가 답답하니? 시험지옥이 끔찍하니? 그럼, 짱돌을 들어라. 꼰대어른들에게 기대 걸지 말아라. 너희 인생에 닥친 문제이니 너희들이 해결해라! 아래로부터의 혁명! 너희가 일제히 학교 안 가버리면, 너희가 일제히 시험 안 봐버리면, 너희가 일제히 대학 안 가겠다고 해버리면, 이 끔찍한 학벌사회 뿌리부터 흔들 수 있어. 입시지옥도 깰 수 있어. 너희가 봉기하면 이십 대가 움직이고 삼십 대가 움직이고 부모님이 움직이고 학교가 달라질 수 있어. 단, 너희가 ‘모두!’ 봉기해야지. 너희는 저질러도 돼. 너희가 들면 짱돌도 꽃이 된다. 그게 십 대의 권리야.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얘들아 절대 노예로 살지 마라.
가끔씩 날아드는 수아의 지청구에도 연우는 끄떡없이 다소 낭만적인 ‘십 대 사랑론’과 ‘십 대 무장봉기론’을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곤 했다. 사막을 노 저어가는 배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는 거친 얘기들이지만, 이런 꿈이라도 꾸어야 할 만큼 현실은 형편없으니 설상가상이라고 할까.
“키스해도 돼?” 지오가 속삭였다. 대답을 들을 새 없이 지오의 입술이 민기의 입술에 포개졌다. 다가갔지만 차마 딸 수 없는 흰 눈 속 붉은 열매 앞에 멈춰선 것처럼 두 입술이 따뜻하게 맞대어져 있다가 머뭇거리며 열렸다. 지오와 민기 저마다의 내부에서 보드라운 숨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주춤거리던 민기의 긴 손가락이 가만히 지오의 목덜미를 감쌌다. 가만 가만히 숨을 쉬며 지오가 민기의 한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유과를 깨문 것처럼 달콤한 침이 온몸에 고여 흐를 것만 같았다. 지오의 손가락이 민기의 등뼈를 건반처럼 짚으며 따라 내려왔다. 아찔한 벼랑과 굽이치는 몸의 계곡을 돌아 나온 달콤한 바람이 이윽고 서로의 혀 끝에 올려지고, 간절해진 어린 몸들이 그 숨결을 삼켰다. 속 날개를 비비며 멜로디를 만드는 여린 목숨들처럼 뜨겁고 여린 신음이 소녀와 소년의 몸속에서 배어 나왔다. 아… 너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잘못 삼킨 것처럼 지오의 의식이 화들짝 깨어났다. 불을 붙이면 타오르는 술이 몸속으로 폭포처럼 흘러든 것 같기도 했다. 아… 선명하게 회오리치며 다가오는 몸의 기억.
첫 키스를 기억해. 죽어서 어느 알지 못하는 모퉁이를 돌아갈 때에도 잊지 못할 키스. 그 애의 몸의 느낌을 낱낱이 기억해. 입술과 혀의 촉감도 기억해. 비슷한 냄새를 가진 사람. 지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본문중에서)
“아모르 파티!” 소녀가 가만히 민들레 홀씨에게 속삭였다. 손바닥 위의 민들레 홀씨를 들여다보던 소녀가 이윽고 손바닥 위로 훅! 숨을 불었다. 은빛 홀씨가 가볍게 떠올랐다.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홀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나가던 몇 사람이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의 출현에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일렁였다. 딱히 소녀의 차림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튄다, 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녀의 일거수일투족엔 튀면서도 오랫동안 몸에 밴 숨결처럼 자연스러운 게 있었다. 은빛 솜털날개를 단 꽃씨가 드넓은 수평 속에 스미듯이. 목적을 미리 정하지 않은, 속도감을 버린 꽃씨의 유영처럼.
꿈은 어디 있냐고? 글쎄. 월급 나오는 직장에 붙기만 한다면! 마음 졸이며 ‘후루룩’ 삼키던 라면 국물에 말아 먹은 딱딱한 찬밥 덩이가 혹시? 그건 이미 소화되어 피둥피둥한 살과 누리끼리한 피부로 형질 변화했지. 그렇게 사 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서른을 코앞에 둔 막막한 스물아홉이 된 것이다.
성취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열심히 습관적으로 한다(행복한가 어떤가 따위는 묻지 말 것). 월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저축하며 결혼자금을 만든다. 결혼한다. 아이를 낳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향해 장기 도전. 내 집 마련. 아이들은 크고. 다 큰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나는 ‘노약자’가 되어. 죽는다.
호오, 이런 명쾌한 덧뺄셈이라니. 물론 그 사이에 복병 같은 괄호들이 때때로 놓이겠지만, 이 명백한 산술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생이여. 희영은 덜컥 겁이 났다. 부랴부랴 여권 사진을 찍고 여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항을 그리워하는 병이 시작되었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가는 것이 좋듯이 여권을 들고 공항에 와 비행기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좋았다. 정작 자신은 떠나지 못하면서. 매일 코코돌코나기펭! 주문을 외우면서.
그런데 차츰 궁금증이 생겼다. 초경을 한 내 버자이너가 보고 싶어진 거다. 그런데 아무리 고개를 수그려봐도 볼 수가 없었다. 정확히 내 몸의 어디에서 피가 나와 붉은 꽃무늬를 찍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만든 흰색 모슬린 원피스를 입고, 조안이 백리향과 크로커스 꽃으로 만들어 얹어준 화관을 쓰고, 작은 여신처럼 뒤뜰 장미정원을 우아하게 걷다가 나는 말했다.
“내 버자이너가 보고 싶어.”
엄마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내 손에 할머니가 아끼는 18세기 베네치아산 유리공예 거울을 들려주었다. 하늘이 파랬다. 바람이 향기로웠다. 흰 구름이 떠갔다. 나는 우리 식구들이 가끔 둘씩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 그네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모슬린 원피스를 들쳐 올렸다. 거울이 반짝였고, 햇빛이 부서지며 내 꽃을 밝혔다. 사실, 그건 그다지 예쁜 꽃이... 아니었다. 분홍빛 도톰한 살로 덮인 좀 뭉툭한 꽃. 따뜻한 햇빛을 받은 내 자그마한 버자이너. 살짝 벌려보았지만 그곳의 어디가 내 몸속과 연결된 구멍인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몸속으로 연결된 구멍을 찾으려고 몇 번이나 손거울의 위치를 바꾸고 고개를 수그려보다가 지쳤다. 몸의 중심이 따뜻해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가든 식탁에는 두꺼운 빵조각을 뜯는 식구들이 햇빛 속에서 빛났고, 나는 살짝 낮잠이 들었다. 유리 손거울을 든 채.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 안 예뻤어.” 내가 식구들 쪽으로 다가가며 나지막이 말하자 엄마와 할머니와 조안이 와그르르 웃었다.
“무슨 소리!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막 피었는걸.”
할머니가 무화과 얘길 했다. “무화과는 속으로 꽃이 핀단다. 그리고 그대로 열매가 되지. 얼마나 달콤하고 향기로운데.”
촛불의 행진 속에 들어와 있으면 말야. 해안에 나가 놀던 날들이 생각나. 밤 바다 속에 들어가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가 숨 쉬는 게 분명히 느껴지잖아? 비슷한 느낌이 들어. 우리 모두 레인보우 비치에서 발가벗고 놀던 날들 기억하지? 숨 쉬는 바다가 숨결처럼 파도를 일으키는 거. 생물체 같은 파도의 움직임. 물결의 감촉… 가다가 막히면 행진 방향을 두고 의견이 나뉘고, 파도가 깨지듯이 흩어져 물보라를 날리기도 하지.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스레 시위 행렬에 합류했다가 자연스레 빠져나가기도 하다가… 행진하는 사람 자신도 내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데 바다가 숨을 쉬듯 전체는 흘러가. 줄을 맞추지도 똑같은 구호를 외치지도 않지만…….
오늘 행진하다가 정말 즐거웠던 순간은 말야. 여러 갈래 물길로 흩어져서 대열이 움직이는데 나랑 내 친구들이 함께 걷던 대열 앞에 전경부대가 떡 나타났을 때야. 이차선 길을 완전히 막아선 전경 부대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눈빛을 주고받은 선두의 사람들이 휙 몸을 돌렸어. 그러자 매스게임을 하듯 차례로 몸을 돌려 대열 맨 후미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두가 되었지. 길을 막고 섰던 경찰들은 허탈했을까 안도했을까. 외침소리와 웃음. 호루라기소리 속에서 물결은 다시 되돌아가며 새 길이 트일 때까지 또 왁자하며 흘러가는 거였어.
전혀 새로운 방향의 물길이, 막힌 길 끝에서 한순간에 탄생한 거야.
“우리 원래 밤길 잘 다녀요. 우리 야자 열두 시에 마치걸랑요?”
한 큐에 경찰의 ‘선도 방송’을 엿 먹인 그 말이 연우의 마음을 가파르게 후벼팠다. 연우는 아이들의 반짝거림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학교는 전쟁터고 학원마다 문전성시다. 자정 무렵이면 연우의 집 근처 대로변에도 어김없이 학원 봉고 차들이 멈춰서곤 했다. 그 닭장차에서 아이들이 졸린 눈을 한 채 강시처럼 쿵쿵 뛰어내렸다. 밤 12시에!
연우가 시시때때 펼치곤 하는 ‘십 대 사랑론’과 ‘십 대 무장봉기론’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얘들아. 산다는 건 꿈꾼다는 거잖아. 꿈이 없으면 좀비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삶이 대체 언제 행복해진단 말야? 학교가 답답하니? 시험지옥이 끔찍하니? 그럼, 짱돌을 들어라. 꼰대어른들에게 기대 걸지 말아라. 너희 인생에 닥친 문제이니 너희들이 해결해라! 아래로부터의 혁명! 너희가 일제히 학교 안 가버리면, 너희가 일제히 시험 안 봐버리면, 너희가 일제히 대학 안 가겠다고 해버리면, 이 끔찍한 학벌사회 뿌리부터 흔들 수 있어. 입시지옥도 깰 수 있어. 너희가 봉기하면 이십 대가 움직이고 삼십 대가 움직이고 부모님이 움직이고 학교가 달라질 수 있어. 단, 너희가 ‘모두!’ 봉기해야지. 너희는 저질러도 돼. 너희가 들면 짱돌도 꽃이 된다. 그게 십 대의 권리야.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얘들아 절대 노예로 살지 마라.
가끔씩 날아드는 수아의 지청구에도 연우는 끄떡없이 다소 낭만적인 ‘십 대 사랑론’과 ‘십 대 무장봉기론’을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곤 했다. 사막을 노 저어가는 배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는 거친 얘기들이지만, 이런 꿈이라도 꾸어야 할 만큼 현실은 형편없으니 설상가상이라고 할까.
“키스해도 돼?” 지오가 속삭였다. 대답을 들을 새 없이 지오의 입술이 민기의 입술에 포개졌다. 다가갔지만 차마 딸 수 없는 흰 눈 속 붉은 열매 앞에 멈춰선 것처럼 두 입술이 따뜻하게 맞대어져 있다가 머뭇거리며 열렸다. 지오와 민기 저마다의 내부에서 보드라운 숨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주춤거리던 민기의 긴 손가락이 가만히 지오의 목덜미를 감쌌다. 가만 가만히 숨을 쉬며 지오가 민기의 한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유과를 깨문 것처럼 달콤한 침이 온몸에 고여 흐를 것만 같았다. 지오의 손가락이 민기의 등뼈를 건반처럼 짚으며 따라 내려왔다. 아찔한 벼랑과 굽이치는 몸의 계곡을 돌아 나온 달콤한 바람이 이윽고 서로의 혀 끝에 올려지고, 간절해진 어린 몸들이 그 숨결을 삼켰다. 속 날개를 비비며 멜로디를 만드는 여린 목숨들처럼 뜨겁고 여린 신음이 소녀와 소년의 몸속에서 배어 나왔다. 아… 너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잘못 삼킨 것처럼 지오의 의식이 화들짝 깨어났다. 불을 붙이면 타오르는 술이 몸속으로 폭포처럼 흘러든 것 같기도 했다. 아… 선명하게 회오리치며 다가오는 몸의 기억.
첫 키스를 기억해. 죽어서 어느 알지 못하는 모퉁이를 돌아갈 때에도 잊지 못할 키스. 그 애의 몸의 느낌을 낱낱이 기억해. 입술과 혀의 촉감도 기억해. 비슷한 냄새를 가진 사람. 지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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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유독 사랑하는 시인은 어쩌면 그 표현과 꼭 닮았다. 시인은 당돌한가 하면 그 목소리는 적잖이 낮고 지나치게 진지하다. 차분하고 결곡한 마음이 곱다 하고 보면, 또 ‘발칙한 진실’의 언어들을 서릿발처럼 쏟아내어 흠칫 놀라게 된다. 그럼에도 그 언어 행간에 스며있는 마음 씀씀이가 착하고 이뻐서 감동하고 만다. 세상에 아무리 하찮은 것들일지라도 그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반짝거리게 하는 따뜻한 가슴과 지혜로운 혜안을 지녔다.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 비평사)은 감각적이고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으며 수만의 독자와 만났고, 두 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를 펴냈다. ‘언어의 활달한 구사,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수사’라는 신경림 시인의 극찬처럼 거리낌 없는 시어들과 도발적인 감수성으로 살아 꿈틀대는 새롭고 넉넉한 ‘모성성’과 ‘여성성’을 발견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2004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산문집으로는 [물 밑에 달이 열릴 때](창작과 비평사), [김선우의 사물들], 전래동화 [바리공주]가 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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