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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명이 죽다 2 / 황시은

임창연 2007. 9. 19. 23:50

     문명이 죽다 2

                                       황시은

 

 은행나무 가로수아래 대형 29인치 TV 한 대

 플러그가 발가벗겨진 채 기대어 있다

 

 월드컵 6연속 진출 소식 박지성이 불끈 주먹 쥐고 하늘로 발돋움하는 모습 화면 가득,

 22살 신병 선배에게 총기 난사 마스크로 얼굴 가린 채 울고 있는 어머니,

 청계천 복원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대통령 평양방문 곁에 꽃다발 든 평양 소녀,

 IMF환란 시래기처럼 엮어져 있던 카렌다 몇 장 찢겨져 연처럼 날아오르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다

 

 가죽소파 위에서 리모컨 쥐고 뒹굴던 아이들 손가락 마다 꽂힌 꼬깔모양 스넥 까르르 웃음 참지 못한다

 

 봄 햇살 아래 놓여진 대형 TV 화면 속 과수원 건너편 매화밭과 하늘의 거리 삼등분한 듯한 자리에 야트막한 산 능선이 담겨 있다.

 

   계간문예지 ‘다층’ 2007년 가을호 게재

 

 텔레비전은 영국의 존 베어드에 의해 1925년에 최초로 만들어진 이후 인류의 문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정신까지도 지배하는 문명의 상징이다. 지금은 모니터라는 또 다른 전달 기관으로 인간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가 아닌 전기라는 매체를 통하여 살 수 있는 전자제품이다. 플러그가 뽑히는 순간 생명은 정지 된다. 시인은 버려진 TV를 통해서 문명이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버려진 TV를 통해서 지나간 뉴스들을 보여 준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TV라는 매체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TV 앞에서 대화가 부재한 채 먹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응시만 하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그러나 버려진 TV에 비쳐진 자연의 풍경을 통해서 돌아가야 할 사람의 자리를 보여 준다.

출처 : 소나무 5길
글쓴이 : 글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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