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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벨 문학상 英작가 도리스 레싱

임창연 2007. 10. 24. 10:54


2007년 노벨 문학상 작가 도리스 레싱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11일 선정된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 씨. 런던 북부에 있는 자택 앞에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의 대표작 ‘황금 노트북’(1962년)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런던=연합뉴스
‘변경의 삶’ 경험으로 기성체제 날카롭게 비판

《노벨 문학상의 오랜 후보였던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88) 씨가 드디어 노벨상 메달을 받는다. 그는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 되는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로 찬사를 받아 온 여성 작가다. 그는 1901년 노벨 문학상이 출범한 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는 100번째(수상자를 못 낸 해가 일곱 해), 여성 수상자로는 11번째이며, 최고령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그는 쇼핑하러 나갔다가 뒤늦게 수상 소식을 듣고 “유럽의 주요 문학상을 다 받았는데 이번 수상으로 로열 플러시(최고의 패)를 가진 기분”이라고 활짝 웃었다.》


▲동영상 제공 : 로이터

○ 주류에서 벗어난 일생

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부모와 함께 짐바브웨로 이주했다. 부모는 황량한 아프리카를 못 견뎌 했지만 그에게는 삶의 해방구였다.

그는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타이피스트 전화교환원 등으로 일했다. 두 번 결혼했으나 주부의 삶을 불편해하면서 이혼한 뒤, 런던으로 옮겨 갔을 때는 첫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의 원고를 들고서였다.

가난한 농장주의 아내 메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그는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다. 이후 시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활동을 펼치면서 1950년대 젊은 작가군을 가리키는 ‘앵그리 영맨’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았다. 반핵운동 등에도 적극 참여하는 ‘행동하는 작가’의 면모도 보였다.


20년에 걸쳐 5부작으로 발표한 ‘폭력의 아이들’도 찬사를 받았으나,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황금 노트북’이다. 이혼한 작가 애나 울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레싱 씨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혁명이나 전쟁이 아닌 여성의 일상을 통해 인종과 계층, 성, 제도의 문제를 표출”(서숙 이화여대 교수)한 이 작품에 힘입은 바 크다.

○ 끝없는 변화 속에 담은 저항의식

레싱 씨는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기를 꺼릴 정도로, 하나의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 급진적인 사회의식을 담은 초기부터, 여성과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든 중기를 지나, 그가 가장 중요한 소설로 꼽는 ‘아르고스의 카노퍼스’ 등 이슬람 신비주의와 과학소설에 몰두한 후기 창작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왔다.

그럼에도 그는 기성 가치와 이념에 대한 비판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정덕애 이화여대 교수는 “그가 들추는 우리의 관습적 생각은 안이하며, 그가 보여 주는 현실은 악몽과 같이 두려운 것”이라고 평했다.

88세가 된 올해에도 신작 ‘클레프트’를 냈고 홈페이지(www.dorislessing.org)를 직접 운영할 만큼 디지털 마인드도 지니고 있다.

그는 이전의 한 인터뷰에서 “나의 노벨상 수상 여부에 대해 30년간 진저리가 날 정도로 논쟁이 있었다”고 토로했을 만큼 오랫동안 수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한국에는 소설 ‘런던 스케치’ ‘생존자의 회고록’ ‘다섯째 아이’(이상 민음사)가 번역 출판됐으며, 10월 중 ‘황금 노트북’(뿔)이 출간될 예정이다. ‘계간문예’ 2007년 가을호에도 단편 ‘19호실로 가다’가 번역 소개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도리스 레싱 약력▼

△1919년 영국인 부모 아래 이란 케르만 샤서 출생

△1925년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농장으로 이주

△1939년 첫 결혼(1943년 이혼), 공 산당 단체인 ‘레프트 북 클럽’에 참여

△1945년 독일인 고트프리트 레싱과 두 번째 결혼, 아들 피터 낳음(1949년 이혼)

△1949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

△1950년 첫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

△1952년 ‘마사 퀘스트’ 발표. 이후 20 년 동안 ‘마사 퀘스트’라는 여성을 주인 공으로 한 ‘폭력의 아이들’ 연작 발표

△1954년 단편집 ‘다섯’으로 서머싯 몸상 수상

△1962년 ‘황금 노트북’ 발표

△1979년 메디치상 수상

△1982년 독일의 셰익스피어상 수상, 오스트리아의 유럽문학상 수상

△1994년 자서전 ‘나의 속마음’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