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키는 마음의 하루
돌아보면 살아온 날들이 참으로 많이도 쌓였습니다.
앞으로 쌓여질 시간들은 먹은 쌀가마니 보다도 낮게 엎드려 있을 터이지요.
아파트 앞베란다 아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거실까지 들어 옵니다.
뒤베란다 개짖는 소리는 붉은 네온십자가 주위에서 요란합니다.
남은 시간들이란 것이 그렇지요 무릇 살아있는 자에게는 가끔은 행운을 갖고 찾아 오기도 합니다.
죽은 자에게는 기억도 시간도 다 소용없는 일이지요.
죽은 화가에게는 아무리 고급 유화물감과 비싼 붓 그리고 질 좋은 캔버스도 의미가 없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지는 삶의 이별이란 것은 살아있는 자의 일입니다.
슬픔의 감정과 눈물도 남아 있는 사람의 반응일 뿐 이지요.
죽음이란 것은 일방적인 인간관계의 단절 선언입니다.
그 후에 주어지는 입관전의 화해라는 짧은 의식도
살아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허무한 각본의 일부이지요.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단단한 저 벽 너머의 세계가 문득 궁금해지는 때도 있습니다.
먼저 간 사람들의 영혼은 안녕하게들 사는지 말입니다.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살고들 계시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이승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보고 거두는지 알고 싶습니다.
돈을 지불하면 얼마든지 사 먹는 이승의 맛있는 과일들을
공짜로 실컷 먹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살기에 화장실도 없는지요.
정말로 이 세상에서 하던 걱정들은 없으신지요.
세상의 때가 없어 빨래할 일은 없으신지요.
흐르는 시간이 없어 낮밤도 없이 뜬 눈으로 지내는지요.
이제는 술잔들 일이 없어 주정도 못하는지요.
이쁜 여자봐도 눈 돌아가는 일 없어 무료한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들 서둘러 갔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입니다.
참으로 가량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어둠이 깊어지면 가을빛이 가득한 바람이 이불을 더욱 여미게 합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이야 하늘이 정하는 일이라지만
그 마음을 추스리는 것은 남은 사람이 살피는 일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마음없는 나무처럼 묵묵히 잎만 흔들고 싶을때가 많지요.
그저 풀꽃처럼 소문없이 작은 꽃잎을 바람에 맡기고 싶을때도 있지요.
형님 지금 그곳은 편안한지요?
저는 늘키는 마음으로 또 하루를 길게 보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