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
'칼레 프랑스 1985' /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作 (2003년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
사진첩
가브리엘레 바질리코의 사진첩이 열린다
칼레 프랑스 1985년은 아직 하늘이
미처 지상으로 내리지 않은 검은 구름으로 멈춰있다
가로등이 불을 끈 채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개가 빛에 밀린 거리 한 켠
흑백의 건반은 손끝에서 반죽되어
회색빛 국수가락이
소리로 쏟아져 나온다
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17의 3번
연주를 끝으로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지워지고
사람들은 아무도 거리를 나서지 않았다
하늘빛 한 조각
칼레의 거리를
한 바퀴 돌아
필름속에 잠긴다
베란다로 들어 온 햇살 한 줌
사진첩을 말리려 책장을 들춘다
따스한 것들이 종이에 혀끝을 발라보지만
렌즈로 묶어놓은 시간은
과거의 물기에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 창 연 -
가까이서 4개월 동안 지내다 '포화속으로' 영화를 함께 보고,
점심을 함께 먹고, 집을 함께 내려 가던 날, 찍었던 사진
늘 씨익 잘 웃다가도, 사진기를 들이대면, 차분해지던 얼굴 표정
지금 잘 지내고 있겠지!
문자라도 보낼까 하다가 참는다
너가 먼저 보내라!
누가 먼저 보내는지 한 번 볼까?
며칠만 더 참으면 너가 먼저 보내지 싶다.
분명히 네가 초점을 제대로 안 맞추고 찍은 사진인데
(아니면 순간적으로 일부러 흔들어 버린 듯 하다)
다시 보니 정말 멋진 사진이네
네가 주고 간 소중한 선물이란다
아버진 걱정 안한다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