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詩
5월이 끝나는 나의 화두는 때죽나무이다.
그 꽃의 향기를 맡으며 출근하고...
향기를 가슴에 품고 퇴근을 한다.
신부의 드레스에 달린 레이스꽃처럼
신부는 없고 향기만 남았는데
그 향기마저 이제는 스러져간다.
막내를 만나러 가는 버스터미널에서
맹인 안내견이 주인과 버스를 기다린다.
혹 누가 실수로 자기의 발을 밟아도 으르렁 거리지 않는다.
오로지 주인을 다치지 않게 안내하는 일이 전부이다.
순한 눈이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 번은 만나고 싶었는데 그 행운을 누린 날이다.
잠시 15분 멈추어가는 휴게소 가장 가파르다는 추풍령이다.
그래서 구름도 잠시 쉬어가야 한단다.
하물며 사람이야 발걸음 멈춰야하지 않겠는가.
버스 안 그물망에는 늘 읽을 책이 담긴다.
끌림이라는 이병률 시인의 사진기행집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컨셉과 비슷하다.
하지만 내 책은 잠시 미루어졌다.
잠시 멈추는 것이 더 멀리 나간다는 지혜를 얻는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포도밭,
겨우내 엎드려 침묵하더니
뜨거운 열매를 감추었다.
초록빛 날개를 조금씩 달아내고 있다.
곧 달디단 과육과 즙을 자랑스럽게 낼 것이다.
입안에서 와인이 고인다.
이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잠시 미루어졌을 뿐이다.
기다린 만큼 더 기쁨이 클 것이다.
이곳에 가서 이 장면을 꼭 찍고 싶다.
산토리노섬 쪽빛 바다가 눈 앞에 어른 거린다.
아이들과 함께 꼭 가고 싶다.
사랑한다.
영신, 혜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들...
막내 혜신이
영신이랑 애슐리 갔을 때
'아버지 다음에 꼭 혜신이랑 같이와요' 했는데
다행히 그 약속을 일찍 지키게 되었다.
식당에서 천천히 3시간 동안 식사를 하며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길한다.
참 다행이다. 영신이도 그렇고 아버지를 친구처럼 생각해주는 게 고맙다.
1박 2일 부산에서 세미나가 있었는데 취소를 하고 나와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영화 '시' 를 함께 보기로 하고
잠시 시간이 남아 둘이서 근처 반디앤루니스에서
막내는 '꿈꾸는 다락방'을 읽고
난 전경린의 '풀밭위의 식사'를 읽었다.
전경린다운 내용이다. 하지만 문장은 꽤 성숙해 있다.
좋게 말하면 절정기이고 문장이 시적으로 많이 매만져져 있다.
내용은 전경린이 주로 다루는 세속적 사랑이다.
사랑도 요리처럼 요리사에 따라서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천박하게도, 우아하게도, 달콤하게도, 매콤하게도 만든다.
또 담아내는 그릇과 장소에 따라서는 고급이되고 싸구려가 된다.
레스토랑과 시장바닥에서 먹는 음식처럼 엄청나게 달라진다.
공지영표, 신경숙표, 전경린표 잘 나가는 트리오.
버스로 시를 보러 가는 길
버스가 흔들리고
시간이 흔들리고
하루를 온전히 아이와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나처럼 저희들도 아이들과
이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영신이는 혼자 서울을 갔다.
내일 남산에서 유니세프 주최 어린이돕기 맨발 걷기에 참가한단다.
詩
사는 것처럼
진솔한 마음을 담아낼 때
감동을 줄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또 하나의 소음이 될 뿐이다.
- by 창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