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새책 소개

식사의 즐거움 (현대문학)

임창연 2010. 2. 27. 09:17

 

 

 

 

섬세하고 정밀한 묘사 속에 감춰진 삶의 비경!

작가 하성란이 그려낸 신(新) 가족의 탄생


자신이 다른 이와 뒤바뀐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는 한 남자

지난한 길을 돌아서 그가 마침내 마주한 식사의 즐거움

 

 


인간의 심리와 개인의 일상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묘사한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 하성란. 자신만의 독특한 내밀함과 섬세함으로 작품을 창조하며 문단의 총아로 자리매김했던 하성란의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된다.

『식사의 즐거움』은 1998년에 발표되었던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12년 만에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롭게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첫 발표 당시 ‘섬세한 세계 인식의 극치를 보여준다(평론가 김윤식)’, ‘장인적인 수공업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오랜만의 신선한 충격이다(평론가 신수정)’, ‘우리 소설의 상서로운 징후이다(평론가 황종연)’ 등의 상찬을 이끌어냈던 이 작품은 자신이 갓난아기였을 때 병원에서 다른 아기와 뒤바뀌었다고 믿는 한 남자가 생의 비의秘意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밀하면서도 절제된 필치로 ‘가족’이라는 보편적 테마 속에 담긴 인생의 본질과 인간의 실존에 대해 탐구해가는 작가적 인식은 삶과 인간관계를 다룬 하성란 작품 세계의 진지함이라 할 것이다.

혈연에만 얽매인 형태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적 의미로서의 가족 문제가 점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이 시대, 『식사의 즐거움』이 다시 읽히고 조망 받을 수 있는 것은 현실을 직시한 작가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 줄거리


수틀리면 밥상을 뒤엎는 폭압적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억눌려 알코올 중독이 된 어머니와 살고 있는 남자가 있다. 남들보다 기억력이 뛰어난 이 남자는 우연히 낯익은 목제 대문집을 발견하고, 그 집이 자신이 27년 전 잃어버린 친부모 집이라고 확신한다.

새벽 두 시의 FM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으로 지친 하루를 달래는 남자. 10년 넘게 듣고 있는 그 프로그램은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 재경과 남자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이다.

아버지가 밥상을 또 엎어버린 어느 날, 남자는 집을 뛰쳐나와 통조림 공장에 취직한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목제 대문집을 맴도는 남자. 집이 비었을 때 담을 넘어 들어갔다가 경찰들에게 체포되는데…….



■ 이 책은…


자신이 어린 시절 뒤바뀌었다고 믿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식사의 즐거움』은 주요한 두 개의 층위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 첫째, 현재의 부모가 자신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환상에 시달리는, 이른바 ‘기억과잉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 남자와 역시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재경이라는 소녀의 이야기와 둘째, 주인공을 둘러싼 갈등, 즉 화가 치밀 때마다 밥상을 뒤엎어버리는 아버지와 그에 짓눌린 채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버지를 통해 증폭되어 온 일탈 욕구는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라는 의식을 남자에게 갖게 하고, 그로 인해 남자는 한 다른 가정을 감시하고 엿보다가, 내 집인 양 침입하기에 이른다. 낯선 남자의 침입에 소동을 빚었던 가족이 신도시로 이사한 후에도 남자는 바퀴벌레 방역 차 버젓이 나타나 “마스크를 벗는 순간 이 중년 부부는 순식간에 놀라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 놀란 부모님들은 남자가 찾아내지 못하는 곳으로 잠적해버릴 수도 있었다. 소독은 한 달에 한 번 있었고 지금 당장으로는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자며 자위한다. 이른바 스토커의 양상까지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이 인물을 통해 작가는 해체일로에 있는 이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다.

아버지를 부정하기 위해 기억을 조작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이야기는 그가 병적 인물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연민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끊임없이 FM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남자가 꿈꾸는 것은 포마이카 밥상에 차려진 한 끼의 식사이다. 그것은 ‘식사의 즐거움’, 가족애의 확인에 다름 아니다. 남자뿐만 아니라 새벽 2시에 고독에 갇혀 깨어 있는 재경, 건장한 체격만이 내가 살 길이라며 통조림을 훔쳐와 먹는 기태, 식사를 만들며 중간중간 술을 마시다 알코올 중독이 돼버린 어머니, 귀가 어두운 척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할머니 등 『식사의 즐거움』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소외된 실존과 억눌린 욕망을 지니고 있다. 하성란은 그들이 꿈꾸는 가족애, 삶의 희망이 부재한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위기에 처한 삶을 감동적으로 묘파해낸다.


이 작품은 지금 읽어도 시간의 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족의 의미를 화두로 삼아 현대사회를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보여진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절제미에다 흡입력까지 갖춘 눈을 뗄 수 없는 문장, 특히 혈연이 아닌 공동체적 유대감으로 엮인 가족이 등장하는 서사에서 더욱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며 일견 위태롭다. 그런 복잡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하성란은 일상과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수사법을 택하였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부모를 찾아 헤매며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자아 찾기를 보여주는 과정은 감동적이며, 가족을 통해 소설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작가와 함께 사물의 표면을 탐구하다 보면 우리도 마침내 그 표면이 감추고 있는 이면과 그 깊숙한 내면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식사의 즐거움』이 선사하는 일독의 즐거움이다.



■ 지은이 하성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소설집으로 『루빈의 술잔』『옆집 여자』『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웨하스』,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삿뽀로 여인숙』『내 영화의 주인공』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본문에서


라디오가 있다면 93.5메가헤르츠를 들을 것. 새벽 두 시.

공책 한 귀퉁이를 찢어 보낸 쪽지에는 그 말이 전부였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쪽지를 전해준 학생을 향해 누구에게로부터 쪽지가 전해졌는지 물으려 했지만 그 학생은 귀찮은 표정으로 책 속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칠판을 향하고 있었고 거북이 갑처럼 구부린 학생들의 등허리로 쪽지의 임자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난데없이 책상 위로 날아든 그 쪽지 때문에 남자는 10년 동안 93.5메가헤르츠로 주파수를 맞추고 새벽 두 시면 어김없이 깨어 있다. -본문 43쪽


순식간에 밥상이 엎어진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 들이 방바닥으로 하나, 둘 떨어지면서 김칫국물이 방 사방 곳곳으로 튄다. 육각형의 밥상이 데굴데굴 장롱 쪽으로 굴러간다. 방 안은 금방 온갖 음식물이 뒤섞여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아버지가 밥그릇을 발로 걷어찬다. 남자는 아버지를 벽 쪽으로 밀어 자신의 두 팔 안에 아버지를 가두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남자는 아버지를 피해 문가로 달아나면서 이틀을 소리나게 부딪친다.

이런 벼엉신.

아버지가 남자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치고 마루로 나간다.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 와 방안에 흩어진 것들을 두 손으로 쓸어담는다. 어머니는 음식물 범벅이 된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다. 이미 여러 군데 귀가 떨어진 흠집투성이인 포마이카 밥상에 또 다른 흠집이 생긴다. 남자는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밥상을 노려본다.

이 밥상이 반으로 부서지기 전에 나는 이 집을 나갈 것이다. -본문 50~51쪽


남자는 밤새 끙끙 앓았다.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언제나 꾸는 똑같은 꿈이다. 남자는 누군가의 품속에 안겨 있다. 온실에 들어선 것처럼 따뜻하다. 남자를 품에 안은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렸다. 멀리 커다란 십자가가 꽂힌 흰색의 둥근 돔형 지붕이 보인다. 저벅저벅 발짝 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자, 이곳이 너의 집이야. 좀 보렴. 후끈한 입김이 얼굴에 다가온다. 사자 머리 모양의 청동상이 보인다. 남자가 울음을 터뜨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개가 짖으면서 달려온다. 아득히 높은 곳에 붉은 열매들이 달려 있다. -본문 102쪽


남자는 아가씨 대신 자신이 저 집 안의 피아노 앞에 앉아 <달빛>을 연주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담장 위에 얹은 열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새벽 두시에 깨어 있을 때마다 남자는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는 했다. 새벽 두시에 깨어 있는 사람만이 <달빛>을 칠 수 있다. 담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발만 올려놓으면 되었다. 담장을 뛰어넘어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거기 피아노 앞에 왕자옷을 입고 있는 거지를 향해 소리칠 것이다. 왕자는 바로 나다. -본문 128쪽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사실은 달라지고,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은폐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기만하여 진실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하성란의 주된 노력은 그 복잡함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문자로 빨려든 듯한 묘사문들이 그의 소설에서 그토록 우세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복잡함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의 첫 번째 결과일 것이다. 현상적 ‘표면’을 간과해서는 표면에서 ‘내면’으로 파고들거나 표면에서 ‘이면’으로 돌려볼 수 없다. 표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뒤져보거나 뒤집어봄으로써 질문과 가정을 실험과 이해로 깊어지게 하는 작업은 하성란의 오랜 습관이며 그의 많은 소설들의 공통점이다. -‘작품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