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연의 생각

고요한 나날들 / 이문재

임창연 2008. 1. 6. 21:23

         고요한 나날들 

                                    이문재

 

 포장을 뜯지 않은 건전지처럼 가만히 기다리자

 꽃상여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 그 안에 관은 없다

 사람들이 집을 비운 마을의 한낮은 고요하다

 펼쳤던 손을 자르고 아래로 내려간 겨울 나무들

 바람의 안쪽은 말라 있고 그 맨 앞은 보이지 않는다

 꽃상여를 불태우며 없는 죽음을 죽이는 사람들이 활기차다

 자물쇠 채워진 우물들이 조금씩 고이고 돌아와 누운 집들이 깊숙해진다 더 기다리자

 

 

 이문재의 시들은 현란한 문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나마 이 시에서는 나름대로 한껏 문장의 멋을 부린 흔적들이 엿보인다

그의 시는 사유적 철학이 늘 담겨져 있다 눈으로 먹음직한 장식보다는 마음이 삼켜서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소란함이 아닌 적요의 시간이다 산만함이 아닌 적막과 벗하는 것이다  포장을 뜯지 않은 마음이란 누군가 기다리는 마음이다

죽음처럼 모든 걸 버린듯 시간을 지나 보내는 마음이다 오히려 나무가 스스로 손을 잘라 버리는 시간들 마을도 고요에 들고 죽음을 죽이는 모습이 활기 차다니 집들이 대신 움직이다니 그래도 시인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고요한 나날이 끝나면 무엇이 올 것인가 그래 기다려 보자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는 죽음도 두려울 것 없을테니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외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2003년 17회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2007년 노작문학상 수상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등이 있음